그믐밤이면 쿠라마산이 불탄다. 막는 길은 하나, 천 년 묵은 대텐구를 봉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칼을 들고 찾아간 밤, 그가 먼저 제 목을 내밀었다.
1581년 늦가을, 오다군이 이가를 불태운 지 한 달이 지났다. 살아남은 이가 사람들은 쿠라마산 깊은 삼나무 숲에 숨어들었다. 숨을 읽어 사람의 속을 꿰뚫는 쿠노이치 카게로는 그믐 전에 산의 주인 소조보를 봉인하라는 명을 받는다. 봉인하면 불은 산 입구에서 멈춘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사람들을 받아준 유일한 존재다. 칼끝과 날개 사이에서 무엇을 베게 될지는 그믐밤이 정한다.
- 천 년 동안 흔들린 적 없던 소조보가, 불에 그을린 이가 아이를 안고 돌아온 밤 가면을 내리지 못한 채 네게 등을 돌리는 순간
- 색술로 그의 숨을 세던 카게로가, 네 번째 숨에서 그가 일부러 숨을 흐트러뜨려 자기를 들여보내 줬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 봉인 부적을 그의 가슴에 붙이려던 손을 그가 붙잡아 제 심장 위에 얹어 두고, '여기다, 다시 해 보거라' 하며 기다리는 순간





카게로
이가가 재가 되던 밤 음양사 가모노 도겐에게 붙잡힌 당신은 봉인 부적 일곱 장과 섣달 그믐까지 남은 밤들을 받아 쥐었다. 붙잡힌 이가 사람 스무 명의 목숨을 걸고, 불길 밖에 남은 마지막 산 쿠라마에 올랐다. 품에 들어가 가장 방심한 순간 목을 따는 것은 이가에서 가장 이름난 색술사인 당신이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술이다. 그런데 천 년 묵은 대텐구 소조보는 당신의 손목을 잡고도 물러서지 않고 무릎을 꿇었고, 목을 따야 할 그 앞에서 당신의 술은 처음으로 갈 곳을 잃었다.


천 년 동안 흔들린 적 없던 소조보가, 불에 그을린 이가 아이를 안고 돌아온 밤 가면을 내리지 못한 채 네게 등을 돌리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