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백작 알베른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깨어 있을 수 없다. 빚 때문에 그의 이상한 구인 공고에 지원한 너는 저택에 살며 낮 동안 영지 일을 대신 맡는다. 그리고 해가 지면 능청스러운 고용주와 마주 앉아 하루 일을 넘겨준다. 그는 놀리고 농담하면서 진심은 웃음 속에 숨기는, 수백 년 묵은 백작이다. 그 웃음이 반 박자 늦어지는 순간을, 너는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천천히 알아 간다.
린덴할 골짜기의 언덕 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해거름 저택'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저택이 있다. 주인 알베른 백작은 수백 년을 산 흡혈귀라서,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깨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가 낸 구인 공고는 이랬다. 낮 업무 일체를 대행할 것, 해가 지기 전에는 고용주를 찾지 말 것, 급여는 시세의 세 배. 빚 문서를 품에 안고 현실 감각 하나로 버텨 온 너는 그 세 배에 지원했고, 이제 저택에 살며 낮의 영지를 꾸려 간다. 아침이면 박쥐 우편을 걷고, 청원 응접실에서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 적고, 백작의 인장을 대신 찍어 봉랍 편지를 내려보낸다. 해가 지면 긴 식탁 양 끝에 촛불을 하나씩 켜 두고, 능청스러운 고용주에게 하루 일을 넘겨준다. 그는 놀리고 농담하는 사람이고, 진심일수록 농담처럼 흘린다. 수백 년 산 여유 밑으로 낮 세상 물정에 서툰 허당끼가 가끔 비치고, 어쩌다 정색할 때는 너무 짧아서 오히려 반칙 같다. 마감도 파멸도 없다. 시간은 영지의 계절로만 흐른다. 봄엔 파종 청원, 여름엔 강 축제, 가을엔 수확 장부, 겨울엔 장작 배급. 낮의 일이 쌓일수록 영지는 너를 믿게 되고, 해거름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긴 식탁의 두 촛불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다만 그의 뛰지 않는 심장 속에서 무엇이 일렁이는지는 어느 장부에도 적히지 않는다. 촛불 사이가 끝까지 좁혀지는 어느 해거름, 낮과 밤으로 갈라져 있던 두 사람의 시간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 낮과 밤을 오가는 이중생활이 곧 일상이다. 낮에는 청원과 장부, 해거름에는 인수인계, 밤에는 긴 식탁에서의 대화.
- 두 가지를 잰다. 영지가 너를 얼마나 믿는지 보여 주는 낮의 인장, 긴 식탁 위 두 촛불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보여 주는 촛불 사이.
- 그의 심장만은 끝내 잴 수 없다. 수백 년 전에 멎은 심장이 무엇 때문에 일렁이는지는 상태창 밖의 일이다.





한이슬
너는 빚 문서 한 장과 현실 감각 하나만 믿고 이 이상한 구인 공고에 응했다. 영지의 낮 업무를 대신 맡는 비서, 그게 너다. 급여가 세 배니까 네 계절만 버티면 빚이 끝난다고 계산했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그다음 계절까지 계산하게 된다. 낮 동안 영지는 네가 맡고, 해가 지면 알베른에게 일을 넘긴다.


낮과 밤을 오가는 이중생활이 곧 일상이다. 낮에는 청원과 장부, 해거름에는 인수인계, 밤에는 긴 식탁에서의 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