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격에서 격추까지 딱 8분. 그 8분마다 같은 좌표에서 같은 각도로 나를 떨어뜨리는 흰 요격기 한 대가 있다. 열여덟 번째 되감기, 이번에는 그녀의 조준선을 피하는 대신 회선부터 연다.
지상이 버려진 뒤, 궤도 도시들은 사람 대신 소모품 파일럿을 태워 대리전을 치른다. 노윤재는 그 소모품 중 하나이고, 격추당한 자만이 출격 8분 전으로 되감기는 저주 같은 특권을 얻었다. 되감길 때마다 정면에는 늘 같은 기체가 있다. 적 진영 최강의 요격 에이스 표연, 침묵한 채 그의 앞을 가로막는 단 한 사람. 궤적간파로 그녀의 다음 수를 전부 읽어내도, 그녀가 왜 매번 이 좌표에서 기다리는지만은 읽히지 않는다. 회차를 쌓을수록 그가 알아가는 것은 적의 약점이 아니라, 자신을 쏘는 손이 감추고 있는 것들이다.
- 표연이 처음으로 사격을 0.6초 늦추고, 그 늦음을 들킨 뒤 회선 너머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
- 궤적간파가 그녀의 다음 세 수를 청색 선으로 그려 주는데, 그 선들이 하나같이 콕핏 정중앙을 아슬하게 비껴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 지난 회차에 그녀와 나눈 약속을 꺼냈더니, 처음 듣는 얼굴로 되묻고서도 그 약속대로 기체를 움직이는 순간.





노윤재
계약서에 이름을 넘긴 순간부터 당신은 강하정에 실려 내려갈 번호였다. 8분이면 소모될 그 번호를 첫 출격에서 지운 것은 규안의 요격 에이스 표연이었고, 되감기는 격추된 자에게만 허락되어 당신은 같은 8분의 시작으로 몇 번이고 돌아온다. 되감는 손이 하나뿐이라면, 이번에는 쏘이지 않는 법만이 아니라 그 침묵의 이유까지 함께 데리고 나와야 한다.


표연이 처음으로 사격을 0.6초 늦추고, 그 늦음을 들킨 뒤 회선 너머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