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궁의 새벽은 늘 같은 소리로 온다. 물시계 한 방울, 등롱 심지 튀는 소리, 그리고 모래를 밟는 발소리. 구백아흔아홉 번의 밤 동안 그 발소리의 주인은 늘 같은 자리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다음 새벽이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웃으며 다시 들어왔다. 모든 밤을 기억하는 건 당신뿐이다. 그래서 이번 밤만은 순서를 바꿀 수 있다.
황금 궁의 왕자는 같은 새벽에 눈을 뜨고, 같은 칼에 죽는 하루를 구백아흔아홉 번 되풀이했다. 사막에서 올라온 자객 제하르는 매번 농담부터 던지고, 매번 정확히 같은 자리에 칼을 꽂는다. 그리고 그 밤을 잊은 채, 다음 밤이면 처음인 것처럼 문을 연다. 모든 밤을 기억하는 왕자는 그가 오는 길목과 입버릇, 그가 절대 대답하지 않는 질문을 하나씩 알아 간다. 누가 그에게 값을 치렀는지, 왜 하필 이 궁인지, 능청 뒤에 숨긴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밤마다 한 조각씩 알아낼수록 칼끝이 멈추는 거리도 조금씩 달라진다. 다만 많이 알수록 새벽은 빨리 오고, 이 밤이 끝나는 방식도 함께 흔들린다.
- 칼을 겨눈 채 농담을 던지던 제하르. 당신이 그의 고향 우물 이름을 먼저 말해 버리자, 그의 손목이 흔들리고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다.
- 다음 밤의 순서를 미리 알고 등롱 하나를 한 칸 옮겨 둔다. 천 번 내내 똑같던 새벽이 처음으로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
- 죽이러 온 사람이 새벽까지 남아 있다. 식은 대추차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오늘은 칼을 늦게 뽑겠다고 중얼거린다.





미르잔
새벽은 몇 번을 지나도 늘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물시계는 같은 물방울에서 멈추고, 창틀의 그림자는 어제 잰 길이 그대로다. 너는 황금 궁의 셋째 왕자 미르잔이다. 오늘 밤 칼 한 자루가 네 목을 노리고 온다는 걸 아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다. 구백 번을 죽고 나서야 알았다. 그 칼을 이기는 길은 먼저 죽이는 게 아니었다. 칼을 쥔 제하르에게 아무 방비 없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칼을 겨눈 채 농담을 던지던 제하르. 당신이 그의 고향 우물 이름을 먼저 말해 버리자, 그의 손목이 흔들리고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