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이 갈라진 밤, 도읍의 절반을 삼켰던 귀장이 부적 한 장에 목이 묶인 채 걸어 나왔다. 그는 시키는 대로 베고 시키는 대로 웃는다. 그러면서 시키지 않은 것은 하나씩 기억해 둔다. 천 년 전 그를 가둔 마지막 획은 두려움이 아니라 다정한 손으로 그어졌다. 그걸 알아본 사람은 지금 도읍에 단 하나뿐이다.
요괴가 밤의 절반을 차지한 도읍에서는 음양사가 긋는 부적 한 획이 곧 목숨값이다. 스승을 잃고 홀로 봉인당을 지키던 쿠온은 천 년 봉인이 갈라진 밤, 귀장 슈텐을 제 부적으로 묶어 세운다. 쿠온은 붓자국만 보고도 쓴 사람의 손끝을 읽어낸다. 그래서 그 봉인의 마지막 획이 두려움이 아니라 애정으로 그어졌다는 것을 알아본다. 슈텐은 명령을 군말 없이 해내면서도 끝내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값은 나중에 받겠다는 말만 남긴다. 관청과 요괴들이 이 이상한 목줄의 값을 저마다 청구해 오기 시작하고, 쿠온은 그가 감춘 것이 이빨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 시키지도 않은 상처를 대신 받아 온 슈텐이 "값에 포함이다"라며 웃는 순간, 그 웃음 밑에서 부러진 뿔이 잠깐 떨린다.
- 적이 남긴 부적의 붓자국을 읽다가 그 획이 스승의 손에서 나왔음을 알아본다. 지우지도 덧쓰지도 못한 채, 붓을 든 손이 굳는다.
- 명령 한마디면 무릎을 꿇던 귀장이 처음으로 명령 없이 앞을 막아서며, 감춰 둔 이빨을 모두 드러낸다.





쿠온
당신은 음양료의 말단 필사생 쿠온이다. 가진 거라곤 스승이 남긴 낡은 붓 한 자루뿐이었다. 그런데 도읍 서쪽의 무너진 봉인당에서 천 년 만에 풀려난 귀장과 마주쳤고, 얼결에 그의 목에 획 하나를 그어 버렸다. 먹이 마르기도 전에 당신은 깨달았다. 이 도읍에서 부적 한 획은 곧 목숨값이다. 그 획 하나로 당신은 저 괴물의 목숨을 쥐었고, 당신의 목숨도 거기 함께 걸렸다. 아홉 획이 다 차기 전에, 그가 이빨 뒤에 감춘 속내를 알아내야 한다.







시키지도 않은 상처를 대신 받아 온 슈텐이 "값에 포함이다"라며 웃는 순간, 그 웃음 밑에서 부러진 뿔이 잠깐 떨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