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에는 적 오천, 성 안에는 창을 쥘 수 있는 사내 예순하나. 원군은 끊겼고 성주는 남은 쌀과 화살을 센 뒤 사람들이 죽는 순서까지 장부에 적어 두었다. 사람마다 쓰러질 흙바닥이 보이는 당신에게, 하필 그 성주의 발밑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국의 끝자락, 원군도 항복도 끊긴 산속 외딴 성이 무대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성을 통째로 떠맡은 토바 츠유는 남은 병량과 남은 칼을 세어 사람들이 죽을 순서까지 미리 적어 두는 성주다. 그 성문으로 굴러들어온 떠돌이 칼잡이는 남을 보면 그가 쓰러질 자리가 먼저 보이는 눈을 가졌지만, 첫날부터 적의 첩자로 의심받고 칼끝 아래 선다. 순서를 하나씩 바꿔 놓을수록 성주는 그를 더 깊이 캐묻고, 캐물을수록 서로가 덮어 둔 것이 조금씩 드러난다. 성이 버티는 날수와 두 사람이 서로를 믿게 되는 날수 중 어느 쪽이 먼저 바닥나는가, 그 싸움이다.
- 칼끝을 겨누며 첩자라 부르던 토바 츠유가, 굶은 병사들 앞에서 제 몫의 주먹밥을 반으로 쪼개 당신 손에 쥐여 주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순간.
- 성벽의 어느 돌 앞에 서면 안 되는지 당신 혼자만 알아서, 이유도 대지 못한 채 병사의 자리를 억지로 바꿔 세우고, 그날 밤 바로 그 돌에 화살이 박히는 순간.
- 함락 전날 밤, 죽는 순서를 적은 장부를 사이에 두고 성주가 당신의 이름을 어느 칸에도 넣지 못해 붓을 멈추고, 먹물 한 방울이 종이에 번지는 순간.






칼끝을 겨누며 첩자라 부르던 토바 츠유가, 굶은 병사들 앞에서 제 몫의 주먹밥을 반으로 쪼개 당신 손에 쥐여 주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