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가 오늘 하루를 사려고 칼 하나를 보냈다. 값은 네 심장인데, 칼을 든 왕녀는 네 목 앞 한 뼘에서 멈춘 채 왜 도망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너는 예언을 끝줄부터 거꾸로 셈해, 그녀가 아직 하지 않은 결심의 줄을 먼저 찾아내기로 한다.
다섯째 태양이 스러지기 전에 누군가의 심장을 바쳐야 세상이 하루 더 이어진다고 믿는 도시국가들의 세계, 사람들은 흑요석 계단 위에서 서로의 왕좌와 목숨을 셈한다. 이번 셈의 값으로 이름이 뽑힌 것은 당신이고, 이웃 물의 도시 아츠칼리는 그 값을 받아내려 여전사 왕녀 시틀라리를 보냈다. 그녀의 흑요석 칼은 예언이 지목한 당신의 목을 향해 있지만, 당신에게는 예언을 끝에서부터 거꾸로 셈해 오늘 무엇이 참이어야 하는지를 되짚는 재주가 있다. 칼을 든 쪽과 목을 내놓은 쪽이 같은 서판을 나눠 읽기 시작하면서, 두 도시의 셈은 처음으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하루를 벌 때마다 값은 오르고, 그 값을 누가 치를지는 아직 어느 줄에도 적혀 있지 않다.
- 시틀라리가 벨 자세를 잡아놓고도 칼을 내리지 못한 채, 안료가 흘러내린 손목의 오래된 자국을 들키고 계단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 예언 마지막 줄에서 거꾸로 짚어 올라가 그녀가 내일 설 칸 번호를 먼저 말해 버리고, 아직 하지도 않은 결심을 이름 붙여 부르는 순간.
- 시틀라리가 흑요석 칼끝을 네 목이 아니라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늘치 태양값은 다시 셈하겠다고 신관들 앞에서 선언하는 순간.






시틀라리가 벨 자세를 잡아놓고도 칼을 내리지 못한 채, 안료가 흘러내린 손목의 오래된 자국을 들키고 계단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