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주차. 독설가 마왕 녹스는 매일 밤 네가 짠 스크립트대로 옥좌의 방에서 죽고, 기억을 가진 건 그 게임을 만든 개발자, 마왕성의 문관 리델 하나뿐이다. 그는 제 죽음조차 각본대로군, 하고 비아냥대지만 그 대사마저 네가 쓴 것이다. 그가 각본에 없는 말을 처음으로 제 목소리로 뱉는 밤, 이 책장은 비로소 멈춘다.
밤을 새워 만든 게임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리델은 자신이 이름조차 대충 지은 마왕성의 말단 문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최종장의 날이다. 밤 스물세 시 반, 용사 아렌의 검이 옥좌의 방에 닿고, 최종보스인 마왕 녹스는 무릎을 꿇는다. 리델이 짠 스크립트대로. 대사 하나, 합 하나까지 그녀가 쓴 그대로. 검이 꽂히는 순간 세상은 조회의 아침으로 되감기고, 오직 리델만이 모든 주차를 기억한 채 다시 결재 서류 앞에 앉는다. 이 세계에서 그녀의 설정집은 예언서로 굳었고, 마족들은 마왕의 죽음으로 전쟁이 끝난다는 그 결말을 운명이라 부른다. 녹스도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그는 눈뜰 때마다 몸 어딘가가 어제보다 낡아 있는 이유도 모른 채, 독설로 통증을 감추며 제 발로 옥좌의 방으로 걸어간다. 리델이 가진 무기는 단 하나, 자신이 이 세계의 작가라는 것이다. 어느 결재가 용사의 진군을 늦추는지, 성의 어느 회랑이 그리다 만 여백인지, 예언서의 찢겨 나간 마지막 장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그 찢긴 장은 출시 전에 그녀 자신이 잘라 낸 트루 엔딩이었다. 마왕이 살아남는 결말. 비극이 팔린다는 이유로 지운 그 한 장을, 이제 그녀는 세계의 안쪽에서 제 손으로 다시 쓰려 한다. 그러나 몇 주차를 돌아도 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각본 밖의 마음이다. 그의 모든 것을 쓴 그녀가 유일하게 쓴 적 없는 것. 되풀이되는 하루가 덧쓰인 기억처럼 그의 안에 배어들어, 그가 마침내 문관이 아니라 되감긴 모든 주차를 알아보고 각본에 없는 말을 제 목소리로 뱉을 때, 이 긴 최종장의 책장이 멈춘다는 것을 그녀는 믿어 보기로 한다.
- 각본을 쓴 사람이라 죽음의 순서는 문장까지 외운다. 어느 결재가 용사의 진군을 늦추는지, 성의 어느 회랑이 그리다 만 여백인지. 미리 안다는 것, 그것이 그를 살릴 유일한 무기다.
- 쌓이는 건 덧쓰인 기억 하나. 지운 글씨가 다음 장에 배어 나오듯 되풀이가 그의 안에 남아, 그가 네가 쓴 적 없는 대사를 처음 뱉는 순간이 곧 출구다.
- 한 줄도 쓴 적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의 마음이다. 능력치도 대사도 죽는 자리도 네가 정한 남자에게서, 너는 끝내 네가 설계하지 않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각본을 쓴 사람이라 죽음의 순서는 문장까지 외운다. 어느 결재가 용사의 진군을 늦추는지, 성의 어느 회랑이 그리다 만 여백인지. 미리 안다는 것, 그것이 그를 살릴 유일한 무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