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널린 열아홉 구 다음, 스무 번째가 될 차례였는데 칼이 목 앞에서 멈췄다. 그녀는 내 가슴에 번진 검은 표식을 보더니 칼을 거두고 날짜 하나를 남겼다. 그날까지 노래에 오를 이름 한 줄을 만들지 못하면, 이번엔 그 칼이 멈추지 않는다.
얼어붙은 피오르드에서는 발키리가 직접 전장을 걸어 데려갈 자를 고르고, 노래에 오르지 못한 이름은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노잡이 할바르는 죽어야 할 날 죽지 못했고, 그를 데려가야 했던 헤르바는 칼을 거두는 대신 기한을 적어 두었다. 그날 이후 할바르의 눈에는 곧 죽을 자에게 번지는 검은 표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눈은 마을을 구하기도 하고, 이름을 걷어 가야 하는 그녀의 일을 정면으로 망치기도 한다. 남은 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의 이름이 노래에 오를지, 아니면 그녀가 제 손으로 그를 데려가게 될지가 갈린다.
- 명부를 읽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던 헤르바가, 자기 칼이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는 걸 들킨 밤에 처음으로 말끝을 놓치는 순간.
- 화톳불 앞에서 웃고 있는 뱃사람의 목덜미에만 검은 표식이 번지는 게 보여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억지로 배에서 끌어내리는 순간.
- 기한이 하루 남은 밤, 헤르바가 자기 칼을 먼저 눈밭에 꽂아 두고 할바르 앞에 마주 앉는 순간.






명부를 읽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던 헤르바가, 자기 칼이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는 걸 들킨 밤에 처음으로 말끝을 놓치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