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환후가 두 해째다. 어진 한 장이 다음 임금을 정하는 궁에서, 세자 이흔은 낮이면 상소를 종이배로 접으며 웃고 밤이면 등을 돌려 얼굴을 감춘다. 한 번 본 것을 잊지 못하는 눈을 가진 화원에게, 그가 삼경을 약속했다.
임금의 환후가 길어지면서 궁은 세자의 어진 한 장에 다음 대를 걸었다. 도화서 화원 변운겸은 한 번 본 것을 잊지 못하는 눈, 불망안을 지녔다. 세자 이흔은 낮이면 나른한 한량으로 웃어 넘기지만, 밤이 되면 등을 돌려 아무에게도 제 얼굴을 내주지 않는다. 화폭이 완성되는 날, 그 그림은 그를 임금으로 올릴 수도 있고 그린 자의 목을 대신 올릴 수도 있다. 밤마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그의 진짜 얼굴을 어디까지 붓에 담을지는 전부 화원의 손끝에 달렸다.
- 낮 내내 종이배를 접으며 웃던 이흔이, 삼경 등불 아래에서는 웃음기를 지운 채 이 얼굴만은 어디에도 옮기지 말라고 낮게 이르는 순간.
- 석 달 전 스치듯 본 그의 손등 상처를 화첩이 그대로 붙들고 있어서, 그가 지우려 했던 그날 밤의 행적이 초본 한 장으로 되살아나는 순간.
- 대신들 앞에 걸린 어진 앞에서 그가 그림 속 제 눈을 한참 들여다보다, 자네는 나를 이렇게 보았느냐고 처음으로 되묻는 순간.






낮 내내 종이배를 접으며 웃던 이흔이, 삼경 등불 아래에서는 웃음기를 지운 채 이 얼굴만은 어디에도 옮기지 말라고 낮게 이르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