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홉 시가 되면 세대 우주선의 시간은 다음 아침 아홉 시까지만 흐르고, 다시 처음으로 되감긴다. 삼천 명 중 이 되풀이를 아는 사람은 항법 기록관인 당신과, 천 년 전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잠들었다가 홀로 깨어난 함장 범해뿐이다. 오늘 밤 그가 처음으로, 당신이 쓰지 않은 문장을 당신 수첩에 남겼다.
천 년째 항해 중인 세대 우주선에서 밤 아홉 시부터 다음 아침 아홉 시까지의 열두 시간이 끝없이 되감긴다. 당신은 항해 기록을 손으로 옮겨 적는 항법 기록관 구예람이고, 손으로 필사한 것만은 되감김을 건너 남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느 밤 냉동 수면 구획에서 마지막 함장 범해가 깨어나고, 그 역시 이 밤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같은 열두 시간 안에서 항로의 진실과 되감김의 이유를 한 줄씩 밀어 나가야 하며, 남길 수 있는 분량은 손이 버티는 만큼뿐이다. 수첩이 두꺼워질수록, 다음 밤의 그가 오늘의 그와 같은 사람일지는 점점 확신하기 어려워진다.
- 천 번을 기억했다던 범해가 정작 자기 이름 옆 칸만은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필적을 대조하다 알아채는 순간.
- 되감김 삼 분 전, 잉크가 마를 시간이 없어 젖은 글씨 위에 손바닥을 얹은 채 아침 아홉 시를 맞는 순간.
- 되감김이 지워 줄 줄 알았던 고백이 이번에도 그대로 남아, 아홉 시 십사 분마다 같은 문장 위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겹치는 순간.






천 번을 기억했다던 범해가 정작 자기 이름 옆 칸만은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필적을 대조하다 알아채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