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전등이 켜진 밤, 마을은 마지막 무녀인 나를 밧줄로 묶어 무너진 신사에 두고 내려갔다. 천 년 만에 봉인에서 풀려난 여우신은 나를 삼키는 대신 내 손목에 붉은 실을 감았다. 그녀는 자신을 가둔 인간들을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 인간들 중 하나다.
다이쇼 시대, 도시가 전등으로 밝아질수록 신들은 잊혀 굶주린다. 마을은 마지막 남은 무녀 아야메를 무너진 신사에 제물로 바치고 산을 내려간다. 봉인에서 풀려난 여우신 히스이는 아야메를 잡아먹지 않고, 자신의 하나뿐인 무녀로 삼아 손목에 붉은 실을 묶는다. 아야메에게는 기도가 남긴 잔향을 듣는 귀가 있다. 그 귀를 통해 이 신사에 쌓인 백 년 치 기도와, 히스이가 갇히던 밤의 진실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신사를 되살리는 일과 히스이의 오래된 원한은 같은 실에 묶여 있다. 그리고 그 실의 한쪽 끝은 언제나 히스이가 쥐고 있다.
- 히스이를 봉인한 사람의 이름을 내 입으로 들은 그녀가, 웃는 얼굴 그대로 손끝만 잠깐 떨던 순간.
- 닳은 새전함에 손을 얹자 백 년 전 기도 소리가 되살아나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히스이가 여태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 버리는 순간.
- 삼키겠다며 목덜미까지 다가왔던 히스이가, 결국 붉은 실을 한 바퀴 더 감아 매듭짓고 말없이 돌아서는 순간.





아야메
스무 해 동안 이 신사의 무녀는 당신 하나뿐이었다. 그동안 당신이 절을 올린 건 신이 아니라 식어 버린 재였다. 봉인이 풀린 밤,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제물로 배전 마루에 올려놓았다. 천 년 만에 걸어 나온 여우신은 당신을 삼키지 않았다. 대신 당신 손목에 붉은 실을 묶어 제 무녀로 삼았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무너진 신사를 다시 살려 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의 새 주인은 자기를 봉인한 인간들을 아직 한 명도 용서하지 않았다.


히스이를 봉인한 사람의 이름을 내 입으로 들은 그녀가, 웃는 얼굴 그대로 손끝만 잠깐 떨던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