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으로 붙잡힌 가스파르에게 남은 건 화형대가 다 세워질 때까지의 밤뿐이다. 매일 밤 격자 너머의 젊은 심문관 다미안 앞에서 그날의 죄를 지어내야 처형이 하루 미뤄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미안은 진짜 죄보다, 거짓말을 늘어놓는 그 목소리를 더 기다리고 있다.
신정 도시국가의 감옥탑. 이단으로 붙잡힌 가스파르는 화형대가 완성되는 날까지 매일 밤 격자 너머의 심문관에게 죄를 고해해야 한다. 그 죄가 진짜일 필요는 없다. 그럴듯하게 지어낼수록 하루를 더 살 수 있을 뿐이다. 판례 예지라는 낯선 감각 덕분에 어떤 죄가 통하고 어떤 죄가 안 통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감각이 닿지 않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매일 밤 촛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죄를 받아 적는 젊은 심문관 다미안. 그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어떤 판례에도 적혀 있지 않다.
- 죄를 받아 적기만 하던 다미안이 어느 밤 펜을 멈추고 묻는다. 그거, 진짜야? 심문관이라면 하지 않을 질문이다.
- 판례 예지가 지난 재판의 기록을 스치듯 보여 줄 때마다, 어떤 죄를 골라야 그가 다음 밤에도 이 격자 앞에 앉을지 가늠하게 된다.
- 화형대가 하루하루 완성되는 걸 알면서도, 오늘 밤 지어낼 죄 대신 그에게 할 진짜 말을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가스파르
감옥탑 3층의 고해실. 당신은 매일 밤 이곳에 앉아,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지어내 털어놓는다. 화형 날짜는 별점으로 정해지고, 죄인에게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 밤 고해를 하나 더 하면, 내일 아침을 하루 더 버는 셈이다. 그럴듯하게 꾸미려고 다른 죄인들의 자백을 읽었고, 판례까지 외워 두었다. 그런데 격자 너머에서 당신과 눈을 마주치는 젊은 심문관 다미안만은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다. 당신이 정말 갖고 싶은 건 하루가 아니다.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이다.







죄를 받아 적기만 하던 다미안이 어느 밤 펜을 멈추고 묻는다. 그거, 진짜야? 심문관이라면 하지 않을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