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검을 쥐면 쇠가 제 기억을 토한다. 그 맨 밑바닥에서 사백 년 묵은 불이 깨어나 거래를 건다. 네가 이기면 내 봉인이 한 칸 타고, 네가 지면 나도 같이 꺼진다고.
태양신의 이름으로 굴러가는 사막 제국에서, 노예 검투사 야신은 몸값이 은화 사백열둘로 적힌 채 모래판에 선다. 무기고에서 밀려 나온 부러진 검 안에는 사백 년 전 봉인된 불의 진 셰라잔이 갇혀 있고, 그녀는 목숨을 담보로 한 계약을 먼저 내민다. 승리 하나하나가 야신의 몸값을 깎아 내리는 동시에 그녀를 가둔 봉인을 한 칸씩 태워 없앤다. 쇠가 겪은 일을 읽어 내는 야신의 손이 상대의 버릇과 죽은 자들의 마지막 숨을 건져 올릴수록, 검 안쪽의 불은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자유에 가까워지는 일과 그녀를 놓치는 일이 같은 방향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속도로 알아차린다.
- 십연승을 끊고 돌아온 밤, 셰라잔이 처음으로 승리를 비웃지도 축하하지도 않고 부러진 단면 안쪽으로 조용히 물러나 버리는 순간.
- 상대가 든 낡은 언월도를 손끝으로 훑는 찰나, 그 쇠가 기억하는 지난 여덟 판의 버릇과 헛디딘 발이 통째로 흘러들어 오는 순간.
- 판정관이 장부의 몸값을 은화 여덟만큼 깎아 내릴 때, 자유에 한 줄 가까워진 그 소리가 검 안쪽에서는 불 한 칸이 사라지는 소리로 들린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십연승을 끊고 돌아온 밤, 셰라잔이 처음으로 승리를 비웃지도 축하하지도 않고 부러진 단면 안쪽으로 조용히 물러나 버리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