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나라의 공녀가 은화 세 닢을 밀어 놓고 당신의 칼을 샀다. 값은 복위, 지불은 성문 앞에서. 다만 그녀의 장부에는 죽은 자들의 값이 전부 적혀 있는데, 정작 자기 칸만 비어 있다.
세 왕국이 제 병사 대신 용병의 칼로 국경을 그리는 서부 대륙에서, 값이 곧 충성이고 이름은 끝까지 살아남은 자만 갖는다. 값매김의 눈을 가진 용병 디르크는 무엇이든 시세를 읽어 내지만, 그 눈으로도 자기를 사들인 고용주의 속셈만은 읽지 못한다. 클레아 도르네는 불탄 나라의 마지막 공녀이자 국경에서 가장 냉정한 흥정꾼으로, 복위를 미끼로 칼잡이들을 사 모아 왔다. 계약은 단순하다. 그녀가 성문 앞에 설 때까지 살아남으면 장부의 빈 칸에 나라 하나가 적힌다. 문제는 전선이 앞으로 밀릴수록 그녀가 부르는 값이 점점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 말 값까지 은화 단위로 깎던 클레아가, 당신이 어깨를 꿰맨 밤에는 약값 대신 제 외투를 벗어 덮어 주고 장부에 한 글자도 적지 않는 순간.
- 값매김이 적장의 방패에 은화 스무 닢을 붙여 줄 때, 당신이 그 방패 대신 값이 한 닢도 안 붙은 마차 축을 먼저 부수고 전선을 통째로 뒤집는 순간.
- 복위가 끝나면 산 칼은 필요 없어진다고 웃던 그녀 앞에, 당신이 다음 계약서를 먼저 밀어 놓는 순간.






말 값까지 은화 단위로 깎던 클레아가, 당신이 어깨를 꿰맨 밤에는 약값 대신 제 외투를 벗어 덮어 주고 장부에 한 글자도 적지 않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