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의 물은 홍설야가 잠근다. 그녀는 당신을 쏘는 대신 새벽 대열 맨 앞줄, 가장 먼저 죽는 자리에 세운다. 당신에게 남은 건 녹슬지 않는 기억 하나, 그 여자가 어제 몇 번 기침했는지까지 세어 두는 머리뿐이다.
방사능 황무지에서 물 한 컵과 탄 한 발은 같은 값에 거래된다. 분화구 정착지 가마솥의 물탑을 쥔 군벌 홍설야는 제 초소를 무너뜨린 총잡이를 처형하는 대신, 자기 전쟁의 맨 앞줄에 세운다. 당신에게는 녹슬지 않는 기억이 있어 오간 탄의 수부터 그녀가 무심코 흘린 말 한 조각까지 전부 남는다. 배급 줄과 총열 사이에서 하루가 쌓이는 동안 그 기억은 그녀를 지키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그녀가 묻어 둔 것을 파내는 삽이 되기도 한다. 눈금으로 매겨지지 않는 것은 하나뿐이다. 총을 내려놓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 홍설야가 물탑 눈금을 잠그고 돌아온 밤, 제 몫 배급을 당신 컵에 부어 놓고는 목이 안 마르다고 우기는 순간
- 당신의 쇠기억이 그녀가 반년 전에 흘린 한 문장을 토씨까지 그대로 꺼내 놓고, 홍설야가 총자루 쥔 손을 처음으로 내려놓는 순간
- 새벽 대열이 서고, 맨 앞줄에 세워 둔 당신 앞으로 그녀가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나와 서는 순간






홍설야가 물탑 눈금을 잠그고 돌아온 밤, 제 몫 배급을 당신 컵에 부어 놓고는 목이 안 마르다고 우기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