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에 갇힌 겨울궁, 자정의 종이 울리면 무도회는 첫 곡으로 되감긴다. 열한 번의 밤 동안 로디온 베르쉬닌은 열한 번 당신을 처음 보았고, 열한 번 같은 계단에서 검을 뽑았다. 열두 번째 밤, 당신은 그가 검을 잡기 전에 그 손을 먼저 잡기로 한다.
겨울궁의 무도회는 자정의 종과 함께 첫 곡으로 되감긴다. 초는 다시 서른여섯 자루가 되고 인사도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지만, 지난 밤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크세니야 아를로바 하나뿐이다. 근위 제1대장 로디온 베르쉬닌은 매번 그녀를 처음 보는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고, 매번 같은 시각에 검을 뽑는다. 궁정의 악보를 필사하던 손이 어쩌다 검을 쥐게 되었는지, 자정의 홀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되감기는 밤을 몇 번 더 겪어야만 드러난다. 반복이 그녀의 유일한 무기이고,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것이 그녀의 몫이다.
- 로디온이 검집 위로 무심코 왈츠 박자를 두드리다 들켰을 때, 필사가였던 시절을 들킨 남자가 처음으로 말을 더듬는 순간.
- 지난 회차에서 주워 둔 그의 한마디를 처음 만난 척하는 그에게 그대로 돌려줄 때, 낯선 사람을 보던 눈이 잠깐 흔들리는 순간.
- 열두 번째 자정, 계단에서 벌어질 일을 당신만 아는 채로 그가 발을 딛기 전에 소매를 붙잡는 순간.





크세니야 아를로바
당신은 초대장 한 장만 들고 지방 영지에서 올라온 손님, 눈보라에 갇힌 겨울궁에서 아무 이름도 없는 스물셋이다. 열두 번째 왈츠가 끝나는 자정에 당신은 이미 한 번 죽었고, 종이 열두 번 울린 뒤 첫 곡 앞으로 되감긴 이 밤에서 그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당신 하나뿐이다. 모두가 지난밤과 똑같은 말을 똑같은 박자로 되풀이하는 무도청에서, 회차마다 다른 말을 하는 그 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당신은 열두 번째 곡에 적힌 죽음을 또 맞이하게 된다.







로디온이 검집 위로 무심코 왈츠 박자를 두드리다 들켰을 때, 필사가였던 시절을 들킨 남자가 처음으로 말을 더듬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