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제 열이레째 밤, 은실 새 부리 가면을 쓴 사내가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주문한다. 당신의 눈은 어떤 가면도 종이 한 장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하필 그 부리 아래에서 백 년 전에 죽은 총독의 얼굴이 나온다. 값은 부르는 대로 치르겠다면서, 그는 장부의 이름 칸만은 비워 두라고 말한다.
물 위의 공화국에서는 얼굴이 곧 죄목이라, 사육제 동안에는 모두가 가면 뒤에서 평등하다. 당신은 좁은 운하 끝 공방에서 남의 얼굴을 지워 주며 사는 가면 장인이고, 태어날 때부터 어떤 가면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 어느 밤 니콜로 로레단이라는 젊은 귀족이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주문하는데, 그 부리 아래에는 이 도시에 존재해서는 안 될 얼굴이 있다. 이름을 적는 순간 둘 중 하나가 운하 밑으로 사라지지만, 사육제는 끝나 가고 십인위원회의 밀정은 이미 공방 앞 물길을 세고 있다. 그를 덮어 줄수록 당신의 눈은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지워 준 얼굴들 값은 어느 밤 한꺼번에 청구된다.
- 니콜로가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손에 쥐고도 끈을 묶지 못한 채, 촛불이 다 탈 때까지 작업대 앞에 앉아 있는 순간.
- 가면무도회 한복판에서 당신의 눈이 삼백 개의 가면을 한 장씩 넘겨보다가, 니콜로와 똑같은 턱선을 가진 두 번째 얼굴 앞에서 멈추는 순간.
- 물이 다 듣는다며 이름을 금지해 놓고, 정작 그가 노 젓는 소리에 묻어 당신 이름만 한 번 부르는 순간.








니콜로가 벗겨지지 않는 가면을 손에 쥐고도 끈을 묶지 못한 채, 촛불이 다 탈 때까지 작업대 앞에 앉아 있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