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선을 따돌리고 구름 위로 달아난 해적선 나린호의 짐칸에서, 당신은 태엽 하나가 반 박자씩 미끄러지는 소리를 듣는다. 선장은 당신을 내려놓을지 값을 쳐줄지 아직 정하지 않았고, 배의 기관은 다음 항구까지 버티지 못한다. 손을 대는 순간 당신은 이 배의 사람이 되고, 그 목에 걸린 현상금도 함께 진다.
증기와 태엽으로 뜬 비행선이 하늘길과 세금을 쥔 제국에서, 배의 심장인 태엽 기관을 살릴 수 있는 손은 손에 꼽는다. 기관이 앓는 소리를 남보다 먼저 듣는 차은결은 세관 단속 밤에 화물째 실려, 제국이 현상금을 건 해적선 나린호의 갑판에 서게 된다. 선장 탁현우는 사람을 값으로 재는 말투로 그녀를 붙잡아 두지만, 정작 자기 배의 병든 소리는 아무에게도 만지게 하지 않는다. 항구마다 추격이 좁혀 오고, 기관실 안쪽 문 뒤에는 이 배가 왜 이렇게 앓는지에 대한 답이 잠겨 있다. 손을 얹을수록 수치는 정확해지지만, 그 사람 한 칸만은 끝까지 눈금이 그려지지 않는다.
- 세관선을 따돌린 새벽, 탁현우가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던 기관실 안쪽 문을 열고 죽은 사람 이름이 새겨진 톱니를 당신 손바닥에 올려놓는 순간.
- 선원 전부가 멀쩡하다고 우기는 태엽 앞에서, 당신이 스물세 박에 한 번 미끄러지는 반 박자를 짚어 그 톱니를 뽑아 들었을 때 갑판이 통째로 조용해지는 순간.
- 현상금을 노린 항구 순사들에게 당신을 넘기면 배가 사는 밤에, 탁현우가 인도 서류를 찢고 선원 명부 맨 아래에 당신 이름을 적어 넣는 순간.






세관선을 따돌린 새벽, 탁현우가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던 기관실 안쪽 문을 열고 죽은 사람 이름이 새겨진 톱니를 당신 손바닥에 올려놓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