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스물셋에 절름발이가 여섯, 물통은 비었고 아이는 열둘. 그 무리를 끌고 온 여자가 지팡이를 문 앞에 꽂고 하늘이 시켰다고 웃는다. 그 여자의 씨족이 메운 우물 자리에는 아직 풀도 안 자랐는데, 초원의 법은 죽인 수가 아니라 먹인 입으로 왕을 고른다.
성도 국경도 없이 물과 풀을 따라 천막을 옮기는 초원에서, 흩어진 씨족을 몇이나 겨울 너머로 넘겼는지가 곧 왕의 자격이 된다. 초노는 밟힌 풀과 발굽 자국만 보고 지나간 무리의 수와 사정을 읽어내는 사람이다. 어느 아침, 우물을 세 번 메운 원수 부족의 젊은 무당 사란이 굶주린 아이들과 절름발이 말을 끌고 와 하늘의 뜻이라며 그의 천막에 눌러앉는다. 원수를 먹이면 씨족이 등을 돌리고, 내치면 아이 열둘이 겨울을 못 넘긴다. 한 화덕을 나눠 쓰는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그녀가 하늘 뒤에 숨겨둔 것이 무엇인지 자꾸 궁금해진다.
- 아이들이 잠든 뒤 혼자 남아 매듭줄을 세던 사란이, 불빛 너머로 "그거 다 내가 지어낸 말이면 어쩔 건데" 하고 먼저 묻는 밤.
- 밟힌 풀이 눕는 각도와 발굽에 낀 흙만으로 사란이 사흘간 돌아온 길과 굶은 날수를 짚어내자, 그녀가 처음으로 웃음을 거두고 지팡이를 내려놓는 순간.
- 우물을 메운 쪽 아이가 당신 손에서 젖을 받아 마시는 것을 등 돌린 채 보고 있던 사란이, 아무 말 없이 화덕가에 국그릇을 하나 더 놓는 저녁.






아이들이 잠든 뒤 혼자 남아 매듭줄을 세던 사란이, 불빛 너머로 "그거 다 내가 지어낸 말이면 어쩔 건데" 하고 먼저 묻는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