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을 나가는 편지는 반드시 한 사람의 손을 거친다. 황제의 딸 굴바다니는 봉랍을 뜯어 읽고, 위험한 문장을 지우고, 뜯긴 적 없는 얼굴로 다시 봉해 돌려준다. 이 정원의 열쇠도 그 허리에 걸려 있다.
붉은 사암 성채의 후궁 정원은 적국 왕자를 살려 두기 위해 지은 황금 새장이다. 볼모로 앉혀진 왕자 메흐란에게 바깥으로 통하는 길은 고향에 보내는 편지 한 장뿐이지만, 그 편지의 첫 독자는 언제나 황제의 딸 굴바다니다. 제국의 첩자를 전부 부리는 그녀는 밀서를 읽고, 목이 걸릴 문장을 지우고, 아무 일 없었다는 손길로 되봉해 돌려준다. 메흐란에게는 숨긴 글을 읽어 내는 밀문간파가 있어, 그녀가 고쳐 쓴 자리와 지운 자리를 거꾸로 되짚을 수 있다. 감시가 어느새 대화가 되어 갈 때, 열쇠를 쥔 쪽과 갇힌 쪽 가운데 누가 먼저 무너지느냐가 이 새장의 진짜 판돈이 된다.
- 당신이 일부러 흘린 가짜 밀서에 굴바다니가 속아 준 밤, 그녀가 뜯긴 봉랍을 도로 붙이며 이건 장부에 적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 돌려받은 편지의 접힌 자국과 번진 잉크만 보고, 밀문간파가 이 문장은 그녀가 밤새 고쳐 썼다고 짚어 주는 순간.
- 성문 열쇠를 쥔 사람이 정작 당신 방 앞에서는 문고리를 잡은 채 한참을 서 있다가, 열지도 잠그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순간.






당신이 일부러 흘린 가짜 밀서에 굴바다니가 속아 준 밤, 그녀가 뜯긴 봉랍을 도로 붙이며 이건 장부에 적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