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게 싼 월세에 끌려, 너는 도시 변두리 골목 끝의 낡은 한옥을 덜컥 계약한다. 분명 빈집이라고 들었는데, 현관을 열자 따뜻한 들기름 냄새가 나고 부엌에는 달빛 같은 머리칼의 여자가 서 있다. 그렇게 같이 살게 된 사람은 다정하고 외롭고, 가전제품과 배달앱 앞에서 쩔쩔매는 수백 살 먹은 구미호다. 막아야 할 재앙도, 끝을 재는 시계도 없다. 둘은 그저 같이 밥을 짓고, 늦은 밤 마루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이 아닌 존재와 한집에 살며 생기는 작은 부딪힘, 그리고 그보다 큰 위로가 계절처럼 쌓여 간다. 그녀가 보여 주는 얼굴이 늘어날수록, 너는 안쪽 끝 닫힌 방 너머에 있는 그녀의 오래된 아픔을 조금씩 알아차린다. 이 평범한 날들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함께 산 날만큼만 천천히 드러난다.
4화부터는 별조각으로 열어요. 한 번 연 화는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어요.
1화약 11분무료빈집의 밥 냄새빈집인 줄 알고 통장을 털어 계약한 한옥에, 밥을 너무 많이 지어 둔 집주인 하루가 먼저 살고 있었다. 규칙은 하나, 안쪽 끝 방엔 들어오지 말 것.
2화약 10분무료계약자님계약서의 번진 한 줄을 따지러 부동산에 간 도하는 위약금 앞에서 한 달만 살아 보기로 하고, 그 줄이 하루가 써 달라던 '같이'였다는 걸 알게 된다.
3화약 14분무료순례네 떡한 달만 살기로 한 도하가 밥값을 갚으려 하루의 장보기를 따라나섰다가, 떡집 할머니에게서 '부디 잘해주게나'라는 부탁과 '순례네'라는 이름을 받아 온다.
4화약 11분20저녁 인사닫힌 방 너머의 말을 엿듣고 하루 종일 방에 숨은 도하가, 해 질 녘 아무것도 끓지 않는 부엌에 나가 저녁 인사를 건넨다. 그가 내민 동거 규칙 아래에 하루는 옛 글씨로 단 한 줄을 보탠다.
5화약 11분20세탁기십일월 찬물에 손빨래하던 하루에게 도하가 세탁기를 가르치고, 둘은 버튼마다 서로의 글씨로 이름표를 붙인다. 그런데 빨랫줄 끝 감나무 그늘에, 아주 오래된 아이 저고리가 걸려 있다.
6화약 11분20첫 배달밥을 짓지 않은 저녁, 하루가 도하의 '일 인분' 영수증을 들고 와 처음으로 배달앱 주문을 한다. 두 사람 몫은 짜장면 열 그릇이 되고, 대문 앞에 선 배달 기사는 옆집 청년이다.
7화약 9분20몇 밤이나
8화약 10분20세입자일 뿐
9화약 11분20화요일 분리수거
10화약 11분20점집 알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