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밥 냄새
캐리어 바퀴가 골목 돌바닥에 덜컹 걸렸다.
"빈집이에요, 계약자님. 아무도 안 살아요."
나는 중개인의 그 말 하나만 믿고 계약서 맨 아래에 이름을 적었다. 내가 바란 건 하나였다. 아무도 나한테 뭘 묻지 않는 집.
대문을 밀자 들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칙, 칙. 밥솥에서 김 빠지는 소리가 났다.
빈집에서 누가 밥을 짓고 있었다.
"...누구 계세요?"
대답 대신 부엌 쪽에서 뚝배기 끓는 소리가 났다. 나는 신발을 벗을지 말지 한참 망설이다가 문턱을 넘었다. 남의 집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넘었다. 내 집인데.
부엌 문턱에 여자가 하나 서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머리칼이었다. 낮게 한 번 묶어 어깨 앞으로 넘긴 머리칼이 부엌 창으로 드는 늦은 오후 빛을 받고 있었다. 무슨 색이라고 딱 말할 수가 없었다. 달빛 같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다음에 눈이 보였다.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낯선 눈이었다.
여자는 주걱을 든 채 나를 봤다. 놀라지도 않았다. 김이 한 번 칙 빠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아, 왔군요."
"아니 잠깐만요."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그거였다.
"여기 빈집이라고... 저 오늘 입주하는... 혹시 제가 집을 잘못..."
"잘못 안 왔어요."
여자가 주걱을 밥솥에 걸쳐 두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내 계약서 사본이었다. 저게 왜 저 사람 손에 있지.
여자가 종이를 펴서 한 글자씩 읽었다.
"도하 씨."
내 이름인데, 낯선 사람 입에서 나오니까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맞죠? 여기 그렇게 적혀 있어서요."
"...네. 맞는데요."
"저는, 하루라고 해요."
하루. 자기 이름인데, 오래 불러 보지 않은 이름처럼 천천히 말했다.
"이 집 주인이에요. 그리고 이 집에 살아요. 당신이랑 같이."
그다음부터 나는 '당신'이었다.
"같이... 뭐라고요?"
"같이요."
설명은 붙지 않았다. 하루 씨는 그 두 글자만 놓아두고 기다렸다. 나는 삼키지 못했다.
하루 씨가 종이를 도로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불편하면, 물러도 돼요. 계약."
목소리는 아까와 똑같이 느렸다.
"그래도 저녁은 먹고 가요. 밥은 많이 지어 뒀어요."
물러 봤자 갈 데가 없었다. 도장 한 번에 통장이 바닥났고, 오늘 밤 잘 데는 여기 말고는 없었다.
"...저 먹으라고요?"
대답은 늦게 왔다.
"...어쩌다 보니."
나는 밥솥을 봤다. 혼자 사는 사람 부엌에 있을 크기가 아니었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하루 씨가 복도 끝을 봤다. 마루를 지나 안쪽으로 꺾어 들어간 끝에 문 하나가 닫혀 있었다. 어둑한 데서 놋쇠 문고리만 혼자 빛났다.
"안쪽 끝 방."
길게 늘어지던 말끝이 거기서, 도마에 칼 떨어지듯 툭 끊겼다.
"저 방은 안 돼요."
"...네."
"나머지는 다 당신 집이에요. 부엌도, 마루도, 마당도. 당신 방은 그 바로 앞이에요."
바로 앞이라니. 하필.
"그 방은 왜..."
"그건... 그냥 두세요."
말끝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하루 씨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부엌으로 돌아섰다. 더 물어볼 틈은 거기서 닫혔다.
마당에는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주황색 감을 매단 채 서 있었다. 나는 그 아래서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집주인분이 같이 사신다는 말은 안 하셨잖아요."
"아이, 그런 건 뭐 신경 안 쓰셔도 되고요. 보증금 삼백에 월세 십오만, 그 동네에 그 값 없거든요. 아, 손님 오셨다!"
뚝.
"...아니, 잠깐만."
끊긴 전화에 대고 반말이 튀어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짧게 웃음이 났다. 바람도 없는데 감나무 잎 하나가 내 어깨를 스치고 떨어졌다.
"통화, 끝났어요?"
돌아보니 하루 씨가 마루 끝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다.
"상 차렸어요. 와서 앉아요."
마루에 낮은 상이 펴져 있었다. 구석에는 먼지 앉은 낡은 라디오 하나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상을 보고 나는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고봉으로 담은 밥 두 공기, 그 옆에 밥이 또 한가득 담긴 큰 대접이 있었다. 국과 김치와 나물이 있었고, 처음 보는 전 같은 것도 있었다.
"이게... 뭐예요?"
"장떡이에요. 고추장 풀어서, 들기름에 지진 거."
"장떡..."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루 씨가 내 얼굴을 보다가 젓가락을 상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요즘은 안 먹나 봐요."
서운한 기색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들른 동네에서 문 닫은 가게 간판을 확인하는 사람 같은 말투였다.
"입에 안 맞으면, 두세요."
한 입 베어 물었다. 짭짤하고 고소하다가, 끝에 매운맛이 살짝 올라왔다.
"맛있는데요? 요즘 사람들은 이걸 왜 안 먹지."
하루 씨 입꼬리가 조금 움직였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내 밥그릇을 봤다. 반쯤 비어 있었다. 주걱이 대접으로 갔다가 내 그릇으로 왔다.
"더 드세요."
"아, 저 이거면..."
"밥은 늘 두 사람 몫으로 지어요."
그 말을 하고 나서, 하루 씨 눈이 아주 잠깐 내 어깨 너머로 갔다. 마루를 지나 꺾어 들어간 복도 끝, 놋쇠 문고리 쪽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닫힌 문만 있었다. 다시 돌아봤을 때 하루 씨는 벌써 내 밥그릇에 주걱을 대고 있었다.
늘, 이라고 했다.
하루 씨 손목이 소매 끝으로 조금 나와 있었다. 가늘었다. 내 손목의 반이나 될까 싶었다. 주걱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서 있었다. 밥 한 주걱 푸는 데 그렇게까지 힘을 줄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 손목에서 눈을 한참 늦게 뗐다.
하루 씨는 자기 밥은 몇 숟갈 뜨지 않고 내가 뭘 집는지만 봤다. 장떡을 집으면 장떡 접시가 내 쪽으로 반 뼘 밀려왔다. 나물을 집으면 나물 접시가 밀려왔다.
"짐은, 그게 다예요?"
"네. 상자 몇 개."
"다 풀어요?"
"...대충요. 필요한 것만."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왜 이사 왔냐, 무슨 일 하냐, 그런 거.
하루 씨는 고개만 끄덕였다.
"네."
그게 다였다.
아무도 나한테 뭘 묻지 않는 집. 바라던 그대로였다. 그런데 막상 아무도 묻지 않으니, 내 숟가락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부엌에서 뚝배기만 혼자 보글거렸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혼자... 사신 지 오래됐어요?"
내가 제일 듣기 싫던 종류의 질문이었다. 하루 씨 숟가락이 멈췄다. 부엌의 보글거림도 마침 그때 잦아들었다.
"...어쩌다 보니."
그러고는 빈 장떡 접시를 들었다.
"장떡, 더 지질까요."
자기 얘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끝인 줄 알았다. 접시를 든 채 일어서던 하루 씨가 마루 구석 라디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손끝으로 라디오 위의 먼지를 한 줄 닦았다. 켜지는 않았다. 먼지 묻은 손끝을 앞치마에 문지르면서, 내 쪽은 보지 않고 한마디를 보탰다.
"상자는, 다 풀어도 돼요."
짐 얘기는 아까 끝난 줄 알았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하루 씨는 빈 그릇을 든 채 한참 나를 봤다. 그러다 앞치마에 손을 한 번 더 닦고 물러났다.
"그럼, 부탁할게요."
그릇을 엎어 놓고 나오니 하루 씨가 마루 벽 앞에 서 있었다. 벽에 붙은 하얀 보일러 리모컨 앞이었다. 미간에 작은 주름까지 잡혀 있었다.
"이건... 어떻게 켜는 거였더라."
"네?"
"지난겨울엔 켜졌어요. 분명히."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망설였다.
"이 빨간 거예요, 아니면 이 세모난 거예요. 세모난 건 위로도 있고 아래로도 있어서요."
아까 '저 방은 안 돼요' 할 때랑 똑같이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웃겼다. 나는 웃음을 삼키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빨간 게 전원이고요, 세모는 온도... 제가 해 드릴게요."
내가 한 발 다가서자 하루 씨가 반 걸음 물러났다.
작은 움직임이었다. 피했다기보다는 몸이 먼저 자리를 비켜 준 것 같았다. 나도 멈췄다. 둘 사이에 리모컨 하나만큼 거리가 남았다.
나는 팔만 뻗어 빨간 버튼을 눌렀다. 삑. 집 어딘가에서 낡은 보일러가 웅, 하고 깨어났다.
"...됐어요. 이제 바닥 따뜻해질 거예요."
하루 씨는 리모컨만 보다가, 숨 한 번쯤 지나서 말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덧붙였다.
"당신은 이런 걸 잘하네요."
"버튼 하나 누른 건데요."
"저한테는, 그 하나가 어려워요."
나는 웃지 못했다.
씻으려고 가방을 뒤지는데 칫솔이 없었다. 마루로 나가 물었다.
"저, 혹시 근처에 칫솔 살 만한 데..."
"칫솔이요?"
하루 씨가 마루 끝에서 골목 쪽을 가리켰다.
"골목 입구에, 초저녁부터 밤새 불 켜진 가게가 있어요. 거기 다 있어요."
"편의점요?"
하루 씨는 대답하기 전에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네. 그거요."
그리고 대문 쪽으로 턱을 조금 들었다.
"늦게 다니지 말고요. 대문은 열어 둘게요."
편의점 계산대의 알바생은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었다. 칫솔을 내밀며 괜히 한마디 보탰다.
"저 오늘 골목 끝 한옥으로 이사 왔거든요."
"아, 그 집."
바코드가 삑 울렸다.
"생닭에 소주에 팥빙수."
"네?"
"그 집 분이 밤마다 사 가시는 거요. 단골 취향이시겠죠."
삑.
"봉투 오십 원인데요, 손님."
나는 칫솔 하나를 맨손에 쥐고 나왔다. 생닭이랑 소주랑 팥빙수라니. 그 조용한 사람이, 그걸 밤마다.
골목 건너 대문 앞에 배달 봉지를 든 또래 남자가 서 있었다. 내가 한옥 쪽으로 꺾어 드는 걸 보더니 눈썹을 올렸다.
"어, 거기 사세요?"
"네, 오늘 이사 왔어요. 도하예요."
"아, 도하 씨. 그 한옥요? 옛날부터 말이 좀 있었어요. 우리 할머니가 그 집 아가씨 얘기를 자주 하셨는데, 저 감나무 밑에서..."
남자가 말을 멈추고 혼자 웃었다.
"아 근데 뭐, 저도 들은 얘기라. 아, 이거 식는다."
대문이 닫혔다.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감나무에 주황색 감이 아직 몇 개 매달려 있었다.
한옥 처마 밑에 호박색 등이 켜져 있었다. 대문은 정말 열려 있었다. 마루 끝에 하루 씨가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네."
"추웠죠."
"편의점 알바분이 그러던데요. 생닭에 소주에..."
하루 씨 눈이 잠깐 내 손의 칫솔에 머물렀다.
"팥빙수를, 이 날씨에요?"
하루 씨는 잠시 생각했다. 보일러 버튼을 고를 때와 똑같은 미간이었다.
"겨울 빙수가, 덜 녹아요."
이번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웃음이 터지자 하루 씨가 나를 봤다. 내가 왜 웃는지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아이, 기억력이 좋네요."
그게 끝이었다. 하루 씨가 일어서며 말했다.
"밤엔 창에 감나무 그림자가 들어요. 놀라지 말고요."
그리고 한마디가 더 왔다.
"바닥은 따뜻할 거예요. 당신이 켰으니까."
내 방에는 테이프도 안 뜯은 상자 다섯 개가 벽에 붙어 쌓여 있었다. 다 풀어도 된다던 상자였다. 나는 하나도 뜯지 않고 불을 껐다. 바닥이 등 밑에서 천천히 데워졌다. 창호지에 감나무 그림자가 번졌다. 가지가 손가락처럼 길었다. 미리 들어 둔 덕에 무섭지는 않았다.
바로 앞이 그 방이었다.
자려고 눕는데 노래가 들렸다. 지직거리는 낡은 녹음이었고, 남자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오래된 노래였다. 저녁에 하루 씨가 손끝으로 먼지를 닦던 라디오가 떠올랐다.
나는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마루에 나가 있었다. 라디오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플러그가 뽑힌 채였다. 전선이 몸통에 둘둘 감겨 있었다.
노래는 내 등 뒤, 복도 끝에서 나고 있었다. 낮게 흐르다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복도를 걸어 들어가 문 앞에 섰다. 놋쇠 문고리가 손 한 뼘 앞에 있었다. 차가울 것 같았다.
손을 뻗었다.
'저 방은 안 돼요.'
나는 손을 거뒀다.
그 순간 노래가 뚝 끊겼다.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 창을 손가락 하나만큼 열었다.
창틀에 귤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옆에서 손 하나가 막 거둬지고 있었다. 가는 손목이 소매 속으로 들어가고, 발소리도 없이 그림자가 마당 쪽으로 물러났다.
창을 마저 열었다. 하루 씨는 호박색 등 아래 서서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거기 서 있었던 사람처럼. 등불이 그 머리칼에 고여 있었다. 달빛인지 등불인지 모를 빛이었다.
귤을 집었다. 밤공기에 껍질이 차가웠다.
하루 씨가 고개를 내렸고,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숨을 참았다. 마당을 건너 목소리가 왔다. 낮보다 더 낮았다.
"잠이, 안 와요?"
"...네. 조금요."
대답은 한참 있다가 왔다.
"...저도요."
그 두 글자를 내려놓고, 하루 씨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창을 닫고 누웠다. 귤을 머리맡에 두었다. 눈을 감아도 등불이 고여 있던 그 머리칼이 한참 남아 있었다.
아침은 밥 냄새로 시작됐다.
부엌은 반만 요즘 부엌이었다. 가스레인지와 어제의 압력밥솥이 놓인 쪽 맞은편으로, 한 단 내려간 흙바닥에 옛 부뚜막이 그대로 남아 무쇠솥을 이고 있었다. 하루 씨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아궁이에서 장작이 탁탁 튀었다. 보일러는 못 켜는 사람이 아궁이 불은 잘도 땠다.
"일어났어요? 앉아요. 금방 돼요."
"어제 그만큼 했는데 또..."
하루 씨가 솥 가장자리를 주걱으로 한 번 쓸었다.
"또 많이 됐어요."
그러고는 등을 돌린 채 물었다.
"어젯밤, 잘 잤어요?"
"네. 나중엔요."
문고리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말했다.
"귤, 잘 먹었어요. 아직 안 먹었지만."
주걱이 솥 위에서 잠깐 멈췄다. 하루 씨는 돌아보지 않았다.
"보일러 켜면 방이 말라요. 껍질은 머리맡에 두세요."
"그거 하나 주려고 마당까지 나오신 거예요?"
"달 보러 나간 거예요."
말끝이 너무 빨리 왔다. 하루 씨답지 않게.
"다행이에요. 잘 잤다니."
하루 씨가 솥뚜껑 손잡이로 맨손을 뻗었다.
"아, 그거 뜨거울..."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내 손이 하루 씨 손목을 잡고 있었다.
서늘했다. 아궁이 불이 바로 발치에서 타는데, 그 손목은 우물물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서늘했다. 어제 소매 끝에서 오래 봤던 손목이 내 손 안에 다 들어왔다.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이 남았다.
하루 씨는 손을 빼지 않았다. 내 손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장작이 한 번 탁 튀었다.
그러고 나서야, 아주 천천히, 내 손가락 사이로 제 손목을 빼냈다.
"...괜찮아요."
그 손이 그대로 손잡이를 쥐었다. 뚜껑이 들리고 김이 확 터져 올랐다. 하얀 김 너머, 찬장 아래 그늘로 붉은 것 하나가 스쳤다. 털끝 같기도 하고 불씨 같기도 했다. 그 끝이 하루 씨 치맛자락 뒤로 스르르 감겨 들어갔다. 눈을 깜빡이니 없었다.
하루 씨가 솥뚜껑을 부뚜막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이 보였다. 하얬다. 달군 무쇠를 맨손으로 쥐었던 손바닥에 붉은 기가 한 점도 없었다.
그 손이 그대로 국자를 들었다.
"하루 씨, 방금..."
국자가 멎었다. 딱 한 박자였다. 뚝배기 끓는 소리만 혼자 남았다.
그리고 국자가 다시 움직였다. 대답 대신 밥그릇이 건너왔다.
"식기 전에 드세요."
상에 마주 앉았다. 딸그락, 내 숟가락. 딸그락, 하루 씨 숟가락. 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숟가락을 쥔 내 손바닥에 아까 그 서늘함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찬장 아래를 한 번 더 봤다. 그늘은 그냥 그늘이었다. 고양이인가 하다가 깨달았다. 어제 이 집을 다 둘러봤는데, 어디에도 고양이 밥그릇은 없었다.
두 번 묻지는 않았다. 어젯밤 문고리 앞에서처럼, 이번에도 내가 고른 거였다.
하루 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까 그 국자로 내 국그릇을 채웠다. 그릇을 내 앞으로 내밀면서, 내 쪽은 보지 않고 말했다.
"내일 아침도, 많이 지을 거예요."
"네. 내일도 먹을게요."
국그릇을 놓던 손이 상 위에 그대로 머물렀다. 부엌의 뚝배기도 그 순간만은 조용했다.
또 무슨 말을 삼키려나 싶었는데, 하루 씨가 그제야 나를 봤다. 복도 끝이 아니라, 나를.
"...그럼, 내일도 두 사람 몫이에요."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