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전까지 사생활은 없다, 사적인 감정도 없다. 대표 주헌우가 직접 그은 선이었다. 그런데 실력창의 숫자가 오를 때마다, 그 선 안쪽에서 그가 자꾸 다른 말을 흘린다.
고은채는 이름 없는 연습생 중 하나였다. 데뷔조에 들 가능성조차 희박했던 어느 날, 그녀의 눈앞에만 보이는 낯선 창이 뜬다. 보컬, 안무, 무대 매력, 숫자로 매겨지는 실력창. 그리고 그 숫자가 오를 때마다, 회사 대표 주헌우가 연습실에 내려오는 횟수도 함께 늘어난다. 그는 데뷔 전까지 완벽하게 관리하겠다며 사적인 관계에 분명한 선을 긋지만, 그 선 안쪽에서 그가 흘리는 말들은 대표의 것이 아니다. 실력창이 올라갈수록 가까워지는 것이 데뷔인지 그 사람인지, 은채 자신도 알 수 없어진다.
- 무표정하게 성적표를 읽어내려가던 그가, 네 이름이 적힌 줄에서만 손끝의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 안무 동작 하나 고쳤을 뿐인데 실력창의 숫자가 오르고, 그 오른 숫자를 확인한 그가 데뷔조 회의 시간을 미루는 순간.
- 계약서 몇 줄로 너를 관리하겠다던 그가, 그 계약서에 없는 말로 먼저 선을 넘는 순간.





고은채
갱신일마다 당신은 대표석 앞에 서고, 주헌우는 종합 평가 상위 삼 퍼센트라는 한 줄만 읽고 서류를 덮는다. 그 숫자를 떠받치는 실력창은 오직 당신 눈에만 떠서, 보컬과 안무와 무대 매력이 소수점 아래에서 흔들리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데뷔 전까지 연습생과 사적인 말을 섞지 않겠다던 조항을 요즘 가장 자주 깨는 사람이 바로 그라는 사실도, 아직은 당신만 알고 있다.


무표정하게 성적표를 읽어내려가던 그가, 네 이름이 적힌 줄에서만 손끝의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