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밤을 내리 이긴 귀공자가 열세 번째 밤을 앞두고 먹도 안 마른 붓을 굴려 보낸다. 그가 받아 든 연가의 절반은 당신이 남의 이름으로 지은 것이고, 획 하나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궁정에 당신뿐이다. 오늘 밤에는 누구의 이름으로 지을 것인가.
달이 뜨면 궁정은 노래로 마음을 겨루고, 그 노래의 절반은 남의 붓에서 나온다. 스즈리는 귀족들의 연가를 대신 지어 주며 살아가는 대필가이고, 붓결을 읽어 누구의 손이 어느 획을 눌렀는지 알아본다. 열두 밤 연속으로 겨루기를 이긴 아리토키는 말이 투박해 마음을 노래로만 건네는 사람이라, 그가 답가로 답한 상대는 늘 종이에 적힌 이름이지 종이를 쓴 사람이 아니다. 대필 청탁은 밤마다 늘어나고, 스즈리의 이름값과 궁정 자리는 지어 주는 노래의 수만큼 커지지만 정작 자기 이름으로 부를 노래는 한 수도 없다. 밝히면 다 잃고, 숨기면 그의 답가는 계속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
- 말이 투박한 아리토키가 사람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 하면서, 열두 밤 내내 이긴 자기 노래의 셋째 구를 일부러 틀리게 읊고 당신 표정만 살피는 밤.
- 받아 든 연가를 등롱 아래로 옮겨 획을 비춰 보고, 눌러 쓴 자리 한 곳에서 이 사람 손이 아니라는 것이 보이는 순간. 그 사실을 입에 올릴지 삼킬지는 당신이 정한다.
- 당신이 남의 이름으로 보낸 구절에 그가 밤새 답가를 지어 오고, 궁정 전체가 엉뚱한 사람의 이름으로 그 답을 축하하며 잔을 드는 밤.








말이 투박한 아리토키가 사람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 하면서, 열두 밤 내내 이긴 자기 노래의 셋째 구를 일부러 틀리게 읊고 당신 표정만 살피는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