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관님
그 한마디로 끝이었어.
"…감사관님이셨어요."
묻는 말이 아니었어. 확인이었지. 그 사람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어. 내 손목에 내려가 있던 눈을 거두더니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어. 방금 내가 맞춰 잠근 단추 두 개가 형광등 아래에서 반듯하게 빛났어.
문이 열렸어.
복도에 차이경 실장이 서 있었어. 회색 정장에 서류철 하나. 아침에 본 그 방처럼 비뚤어진 데가 하나도 없는 사람.
"선우진 씨. 통금 십칠 분 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실장 옆을 지나가다가 반걸음 멈췄어. 고개를 반 뼘 숙였어.
"실장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듯했어. 한 글자도 흠잡을 데가 없었어. 그런데 '알려 주셔서', 거기에 칼끝이 있었어. 일부러 불렀다는 걸 안다는 뜻이었으니까. 방금 이 방에서 한 박자 늦게 떨어졌던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인데, 온도는 정반대였어.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졌어. 서두르지도 늦추지도 않는 박자로.
"일부러 부르셨죠."
생각보다 목소리가 또렷하게 나왔어. 나는 겁이 나면 이래. 소리는 작아지는데 글자는 오히려 또박또박해져.
실장이 서류철을 반대 손으로 옮겨 쥐었어.
"이레 감사관님. 감시받는 걸 알면, 사람은 조심합니다. 조심하다 보면 실수를 하고요. 그 실수가 기록에 남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 쉼까지 자로 잰 것처럼 똑같았어.
"정리 끝나면, 나가 보세요."
또각, 또각. 아까 문 앞에서 멈췄던 그 간격 그대로 실장이 멀어졌어.
반만 켜진 대기실에 나만 남았어. 알게 하는 것도 관리라는 거지. 이제 그 사람은 내가 누군지 알아. 그리고 실장은, 그 사람이 안다는 걸 알아.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나 하나였어. 그 사람이 새벽 두 시에 어디로 가는지도, 왜 아까 등으로 문을 막아섰는지도.
다음 날 새벽, 이 몸의 작은 원룸. 세면대 거울 속에는 여전히 남의 얼굴이 있었어. 내 방, 내 침대로 돌아갈 길은 아직 몰라.
어제 손목은 세 번 울었어. 주차장, 대기실, 또 대기실. 칠 년 동안 모니터 앞에만 붙어 있던 태그가, 하루에 세 번.
여섯 시. 그 기록이 서버로 올라가는 시각이었어. 손목은 조용했고, 아무 연락도 없었어. 그게 더 무서웠어.
쇼케이스까지, 육십구 일.
오후에는 음악방송 사전녹화가 있었어. 어제 그 방송국, 어제 그 백스테이지. 헤어스프레이 냄새와 다리미 김이 뒤섞인 공기도, 맨 앞에서 걷는 그 발소리도 어제 그대로였어.
"오 분 남았습니다."
대기실 전체에 하는 말이었어. 그 사람은 스태프 한 명 한 명한테 고개를 까딱했어. 메이크업 실장님한테 "감사합니다", 조명팀한테 "감사합니다".
나는 검은 셔츠를 옷걸이째 들고 서 있었어. 그 사람이 행거 쪽으로 걸어왔을 때 목에서 소리가 먼저 나갔어.
"검은 셔츠, 여기요."
그 사람이 멈췄어. 나한테서 딱 반걸음 앞이었어. 그런데 눈은 내 어깨 너머, 두 걸음 뒤의 팀장한테 가 있었어.
"팀장님. 셔츠는 거기 두라고 전해 주십시오."
팀장보다 내가 가까웠어. 그 사람은 내 앞에 서서, 나한테 할 말을, 나를 건너뛰어 팀장한테 했어. 아주 공손하게, 거기 아무도 없는 것처럼.
"…들었지. 거기 둬."
어제까지 나는 "코디님"이었어. 오늘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 뒤로 모든 말이 팀장을 거쳐서 왔어.
"이레야. 인이어 팩은 자기가 찬대. 손대지 말고."
조금 있다가 팀장이 내 손바닥에 핀 쿠션을 툭 얹었어.
"부스엔 나더러 들어오래. 내 허리 나간 거 뻔히 알면서." 팀장이 턱으로 부스를 가리켰어. "네가 해."
"…네."
"우진이 원래 저래. 새 사람 오면."
그게 팀장식 위로였어. 팀장은 몰라. 그 사람이 피하는 게 새로 온 막내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나는 그걸 말할 수 없었어.
첫 퀵체인지.
암막 커튼, 손전등 하나, 무릎까지 울리는 베이스. 커튼이 젖혀지자 땀 냄새와 열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어.
그 사람이 들어서다가 반 박자 멈췄어. 손전등 불빛 안에 팀장이 아니라 내가 있었으니까. 눈은 무대 쪽에 둔 채였어.
"…팀장님은요."
"허리 때문에, 제가요."
"…십오 초입니다."
십오. 팔을 뒤로 빼. 재킷이 벗겨져.
십삼. 새 재킷. 왼팔.
거기서 걸렸어. 행거가 부스 오른쪽에 있어서 그 사람이 반 바퀴를 돌아야 했어. 도는 사이에 허리에 찬 인이어 팩 선이 안감 솔기에 감겼어. 손대지 말라던, 바로 그 팩이었어.
십. 팩은 건드리지 않고 안감을 젖혀서 선을 뺐어. 오른팔.
칠. 무릎을 꿇었어. 밑단, 핀, 접고, 찌르고, 잠가.
삼.
이.
일.
"다 됐어요."
그 사람은 이미 커튼 밖이었어. 누구한테나 하는 "감사합니다"가, 나한테만 빠졌어.
손전등을 끄고 바닥에 앉았는데 손끝이 떨렸어. 겁이 아니라 화였어. 그 사람한테가 아니라, 이 부스한테. 행거 자리 하나에 반 바퀴, 선 하나에 이 초. 그건 이 몸이 아니라 내가 아는 거였어.
저녁, 본방 리허설 전. 복도 자판기가 낮게 웅웅거리는 앞에서, 봉재민 매니저가 캔커피를 쥔 채 나를 보더니 반색했어.
"아, 이레 씨. 저 진짜… 어제 두 시간 잤어요. 두 시간이요. 그래도 오늘 스케줄은 완벽합니다." 그러다 목소리가 낮아졌어. "근데 이레 씨, 우진이 형이랑 뭐 있었어요?"
"…아뇨."
"형이 아침 일곱 시에 실장님 방에 갔다 왔거든요. 제가 차 대 놓고 기다렸습니다."
재민 씨가 그제야 캔을 땄어. 치익.
"전담 바꿔 달라고 했대요. 코디요."
캔 따는 소리가 복도에 유난히 크게 울렸어. 아니, 내 귀에만 그랬는지도 몰라.
"실장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안 된대요. 그 자리에서요." 재민 씨가 손사래를 쳤어. "아, 제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형이 칠 년 동안 뭘 바꿔 달란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숙소 방도, 밴 자리도요. 처음이에요, 진짜."
칠 년 만에 처음 바꿔 달라고 한 게, 나였어.
"매니저님. 의상 동선표, 원본 있어요?"
"동선표요? 팀장님 파일에 있을 텐데… 잠깐만요, 제가 뛰면 돼요."
재민 씨가 몸을 돌리려던 참이었어. 복도 끝에서 목소리가 먼저 왔어.
"재민아. 차 키."
그 사람이었어.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몰라. 재민 씨가 캔을 쥔 채로 튀어 나갔어.
"네, 형!"
그 사람은 키를 받아 쥐면서 한마디를 더 얹었어.
"리허설 이십 분. 복도에서 떠들지 말고."
목소리는 평평했어. 그런데 그 말이 재민 씨 어깨를 넘어 이쪽까지 굴러왔어. 그 사람 눈이 복도를 한 번 훑었어. 자판기, 소화기, 그리고 나. 이번에도 멈추지 않았어.
재민 씨가 그 사람 뒤를 따라가다가 돌아보며 입 모양만 크게 만들었어. 원본.
십 분 뒤, 재민 씨가 숨을 몰아쉬며 종이 한 장을 갖다줬어. 의상 동선표였어.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 부스 입구, 행거, 다시 나가는 길. 누가 몇 년째 고치지도 않고 복사만 해 온 종이였어. 대기실 구석에서 화장품 박스를 책상 삼아 폈어. 화살표 하나가 쓸데없이 반 바퀴를 돌고 있었어.
연필로 그었어.
행거는 그 사람이 들어오는 왼쪽으로. 그러면 돌 필요가 없어.
새 재킷은 소매를 미리 열어서, 팔이 들어가는 각도로 걸어 둬.
선이 감긴 건 안감 솔기였어. 솔기는 테이프로 덮어 둬. 팩에는 손대지 말라고 했으니까, 팩 말고 재킷을 고치면 돼.
밑단 핀은 입에 물지 않아. 안쪽에 반쯤 꽂아 뒀다가, 접어서 잠그기만 해.
종이 위에서 그 사람이 몇 걸음을 걷는지, 팔을 어디로 빼는지, 어디서 숨을 쉬는지가 다 보였어. 두 번 본 동작인데 열 번은 본 것 같았어.
"이레야."
팀장이었어. 은박지에 싼 김밥 한 줄을 들고 있었어.
"밥은 먹었고?"
"…아직이요."
"그럴 줄 알았어."
김밥이 동선표 옆에 툭 놓였어. 팀장의 눈이 연필 화살표를 하나하나 따라갔어.
"네가 짰어?"
"네. 행거만 옮기면 돼요. 본방 전에요."
팀장은 한참 말이 없더니 허리를 짚고 일어섰어.
"네가 짰으면 네가 해. 행거는 내가."
"팀장님, 허리…"
"됐고."
팀장은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다른 손으로 행거를 끌고 부스 왼쪽으로 갔어. 바퀴가 바닥 이음매에서 덜컹거렸어.
본방.
암막 커튼, 왼쪽으로 옮긴 행거, 소매를 열어 둔 재킷, 반쯤 꽂아 둔 핀 두 개.
커튼이 젖혀졌어.
십오.
그 사람이 들어섰어. 돌지 않았어. 행거가 왼손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아주 잠깐, 그 사람 발이 멈칫했어. 반 바퀴 돌 준비를 하던 몸이 허공을 짚은 것처럼.
십사. 재킷이 벗겨져.
십삼. 새 재킷. 팔이 그대로 미끄러져 들어가. 선은 테이프 위로 매끄럽게 지나가. 아무것도 걸리지 않아.
십. 무릎. 밑단. 접고, 잠그고.
칠. 반대쪽. 접고, 잠그고.
오. 일어섰어. 손전등 불빛이 그 사람 턱선을 스쳤어. 노래하다 내려온 숨이 머리 위에서 고르게 떨어졌어.
사.
"다 됐어요."
다음 숫자는 삼이었어. 십오 초짜리 일을, 십이 초에 끝냈어.
그 사람은 곧장 나가지 않았어. 남은 그 삼 초 동안 왼쪽 행거를 봤어. 내가 아니라, 행거를. 그리고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어. 어젯밤 연습실, 엔딩 포즈 뒤처럼. 뭘 세는지는 이번에도 몰랐어.
그리고 나갔어.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이 팀장 옆에서 멈춰 섰어. 나는 두 걸음 뒤에서 벗은 재킷을 받아 들고 있었어.
"팀장님. 오늘 부스, 삼 초 빨랐습니다."
"이레가 짰어."
그 사람의 목이 한 번, 스트레칭하듯 옆으로 꺾였어.
"…그렇습니까."
그러고는 팀장한테 고개를 숙였어.
"감사합니다."
팀장한테였어. 끝까지 내 쪽으로는 고개가 돌아오지 않았어.
재킷을 행거에 걸다가 알았어. 부스 벽에 테이프로 붙여 둔 새 동선표가 없어져 있었어.
마지막 순서까지 끝난 밤, 방송국 대기실.
다들 밴으로 내려갔어. 재민 씨가 뛰어다니던 소리도 끊겼어. 나는 혼자 남아 행거를 정리했어. 다리미 전원을 내리자 마지막 김이 쉬익 빠져나갔어.
문이 열렸어.
이번엔 거칠지 않았어. 손잡이가 천천히 돌고, 문이 소리 없이 밀렸어.
그 사람이었어. 무대 화장을 지운 얼굴에 모자를 눌러써서, 챙 그늘이 눈까지 덮고 있었어.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어. 접힌 자국 사이로 연필 화살표가 비쳤어. 부스 벽에서 사라진, 내 동선표였어.
그 사람은 문을 닫지 않았어. 반쯤 열어 뒀어. 이 시간에 이 방에 둘이 있으면 내일 아침 기사 한 줄이라던 사람이었어. 닫힌 문 안의 둘은 기사지만, 열린 문 안의 둘은 일이라는 듯이.
그 사람이 화장대 앞에 섰어. 눈은 챙 그늘 아래, 손에 든 종이에 내려가 있었어.
복도 저편에서 바퀴 소리가 났어. 장비 카트였어.
지잉.
손목이 가늘게 떨었어. 바퀴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문 앞에서 뚝 끊겼어.
"어? 우진 씨, 아직 계셨어요?"
카트를 밀던 스태프가 반쯤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어. 카트에 실린 조명 스탠드가 덜그럭거렸어.
그 사람이 반걸음 옆으로 옮겼어. 문틈과 나 사이로. 닿지는 않았어. 그 사람 어깨가 문틈을 반쯤 메웠을 뿐이야. 나를 가린 건지, 이 장면을 가린 건지는 몰라.
"네. 내일 의상 확인할 게 있어서요. 오 분이면 됩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반만 내 쪽으로 돌렸어. 눈은 문틈에 둔 채로.
"내일 셔츠, 사이즈 다시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깨가 일 센티 남습니다."
"오 분 남았습니다" 할 때의 그 높이였어. 카메라 앞 목소리.
"아, 네. 고생하세요."
카트가 다시 굴렀어. 손목은 그동안 내내 떨고 있었어. 바퀴 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지면서, 울림도 멎었어.
그 사람 목소리에 걸려 있던 그 높이도 거기서 꺼졌어. 스위치를 내린 것처럼.
오늘 하루, 그 사람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첫 말이었어. 나한테 한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 소리도 없었어.
한 박자.
그 사람은 서두르지 않았어. 그 침묵을 끝까지 다 쓰고 나서야 입을 열었어.
"감사관님."
낮았어. 그런데 어젯밤 "이레 씨"라고 부르던 목소리와는 달랐어. 그때는 숨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섞여 있지 않았어.
"오늘 아침 일곱 시에 실장님께 전담 교체를 요청했습니다. 거절됐습니다."
"알아요."
대답이 바로 나갔어. 모자 챙 아래로 턱이 아주 조금 굳었어.
"…알고 계셨군요."
"이 회사엔 비밀이 없어서요."
"복도 자판기 앞은, 특히 그렇습니다."
코로 짧게 웃음이 났어. 웃을 자리가 아니었는데. 이 회사에서 비밀이 제일 많은 건 나였으니까.
그 사람은 웃지 않았어. 손에 든 동선표만 내려다봤어. 엄지가 연필 화살표 하나를 따라갔어. 행거를 왼쪽으로 옮긴 그 선을.
"십이 초."
종이가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렸어.
"…감사."
거기서 말이 걸렸어. 오 분이면 오 분, 십오 초면 십오 초인 사람이, 한 단어 한가운데서 한 박자를 놓쳤어.
"…관님이 이걸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였을까. 그 사람은 뒤에 두 글자를 붙여서 직함으로 닫았어.
"핀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목이 바짝 말랐어. 이 손이 어디서 배운 건지 말하려면, 내가 이 몸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부터 말해야 했어.
"코디 일이니까요."
"코디 일."
그 사람이 내 말을 그대로 돌려줬어. 온도 없이.
"…그럼 감사관 일은, 언제 하십니까."
대답할 말이 없었어.
그 사람은 동선표를 반으로 접어 화장대 모서리에 맞춰 내려놓았어. 자로 잰 것처럼. 실장 책상 위에 나란히 놓여 있던 펜 두 자루처럼.
"옆에 계셔야 한다면."
그 사람이 손끝으로 모자 챙을 올렸어. 하루 종일 나를 지나쳐 가던 눈이, 처음으로 나한테 와서 멈췄어. 어젯밤엔 내 이름이었고, 오늘 밤엔 내 직함이었어.
"숨어서 보지 마세요."
한 박자.
"어차피 붙으실 거면, 자리는 제가 고르겠습니다. 제가 감사관님을 숙소 쪽으로 붙여 달라고 하면, 실장님은 이번엔 거절 안 하실 겁니다."
"감시받는 쪽이 자리를 고르는 법은 없어요."
"보시는 건 감사관님 일입니다. 어디서 보시는지는, 제 일입니다."
"…왜 숙소예요."
"회사가 궁금해하는 건, 제 밤 아닙니까."
그 사람은 눈을 피하지 않았어. 나도 피하지 못했어.
"감사관님. 내일부터 숙소 대기, 감사관님이 서세요."
숙소. 그 사람이 새벽 두 시에 비상문을 미는 그 복도. 이번엔 끌 알람이 없어.
손목이 울 것 같았는데, 조용했어. 나는 숨을 삼켰어.
그 사람이 한 박자를 또 썼어. 그리고 반 톤 낮춰서 말했어.
"제 눈앞에서."
2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