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대기
그 사람은 문간에서 한 번 멈췄어. 돌아보지는 않았어.
"숙소 통금은 열두 시입니다. 대기는 열한 시부터고요. 내일 저녁에 재민이가 모시러 갑니다. 비밀번호도 재민이한테 받으세요."
방금 반 톤 낮췄던 목소리가 일 얘기 한 줄 밑으로 도로 숨었어.
문은 나갈 때도 반쯤 열린 채였어. 발소리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멀어지는 동안 나는 화장대 위만 보고 있었어. 반으로 접힌 동선표 한 장이 화장대 모서리에 딱 맞춰 놓여 있었어. 내가 짠 종이인데 집어 들 수가 없었어. 이제는 그 사람 물건처럼 보였거든.
다음 날 아침 여섯 시에도 손목은 조용했어. 머릿속 달력에서 한 칸을 또 지웠어. 쇼케이스까지, 육십팔 일.
양치를 하는데 전화가 울렸어. 차이경이었어. 인사는 없었어.
"감사관님. 오늘부터 숙소 대기로 배치했습니다. 선우진 씨가 요청했습니다. 조건이 하나 붙었고요. 보이는 자리."
그 사람 말이 실장 입을 한 번 거쳐서 왔어. 온도는 다 빠지고 뼈만 남은 채로.
"숙소 안에서는 직함을 쓰지 않습니다. 멤버들한테는 코디팀 막내가 대기를 선다고 해 뒀습니다. 대기 일지는 매일 아침 정리해서 가져오세요. 그리고 그저께 새벽 복도 알람 건. 금요일 아침까지 가져오세요."
이틀 동안 한 번도 안 꺼낸 얘기를 지나가는 말처럼 맨 끝에 붙였어.
"…네."
끝까지 물음표는 없었어. 그 기록 창에는 내 계정 이름이 찍혀 있어. 실장이 그걸 봤는지는 몰라. 못 봤으면 숙제고, 봤으면 시험이야.
오후엔 사옥 의상실에서 무대 의상을 다렸어. 그 사람 셔츠 차례가 왔을 때 줄자로 어깨를 재 봤어. 정말 일 센티가 남았어. 어젯밤 스태프 앞에서 둘러대던 말까지 정확한 사람이었어.
팀장이 다리미를 든 채 나를 봤어.
"이레야. 숙소 대기? 네가? 코디가 왜."
"…실장님이 정하셨어요."
"실장님이."
팀장은 그 말을 입속에서 한 번 굴리고는 더 묻지 않았어. 대신 내 발을 내려다봤어.
"거실 바닥 차. 양말 두 개. 졸려도 폰 들여다보지 말고. 눈 버려."
걱정을 꼭 바닥 탓, 눈 탓으로 하는 사람이야. 숙소 복도에 왜 코디가 앉는지, 나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어.
숙소는 오래된 오피스텔 꼭대기 층이었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섬유유연제 냄새가 훅 들어왔어. 현관에는 갈아 신는 운동화가 몇 켤레 흩어져 있었는데, 그중 한 켤레만 앞코가 벽에 딱 맞춰져 있었어. 누구 건지 묻지 않아도 알았어.
"여기가 거실이고요, 이 복도 따라 방이 다섯 개요. 맨 끝이 우진이 형 방, 그 너머가 비상문이에요."
재민 씨가 숨을 몰아쉬며 손가락으로 길을 그었어. 얇은 공책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어.
"이건 대기 일지요. 밤사이 복도에 무슨 일 있었는지 적는 거예요. 아,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요, 이레 씨. 대기 서는 동안엔 복도 알람이 이레 씨 폰으로 먼저 가요. 일 분 안에 안 끄시면 그다음에 통제실에서 울리고요. 대기자가 먼저 확인하는 게 규정이라서요."
공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어. 끌 알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어. 이번엔 모니터가 아니라 내 손바닥 위에.
"그리고 저거요."
재민 씨가 턱으로 거실 끝을 가리켰어. 복도가 시작되는 자리에 접이식 의자가 하나 있었어. 다리 네 개가 바닥 타일 줄눈에 정확히 맞춰져 있었어.
"형이 아침에 연습 가기 전에 직접 갖다 놨어요. 다리 위치를 두 번이나 고치더라고요. 그러고는 차에서 이걸 보냈어요."
재민 씨가 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어. 맨 위에 '우진이 형'이라고 떠 있었고, 말풍선 세 개가 차례로 쌓여 있었어.
"의자 거실 끝. 다리 줄눈에 맞춰 놨음."
"손대지 말라고 해."
"열한 시 전에 비번 알려 주고."
메시지에도 마침표를 꼬박꼬박 찍었어. 손대지 말라고 해. 받는 사람은 재민 씨였는데 듣는 사람은 나였어. 그 사람은 이번에도 나를 건너뛰어서 나한테 말했어.
자리는 제가 고르겠습니다. 어젯밤 그 말이 의자 모양으로 거기 놓여 있었어.
"저 진짜… 오늘도 차에서 눈 붙인 게 다예요." 재민 씨가 현관 쪽으로 몸을 돌렸어. "그래도 스케줄은 완벽합니다."
밤늦게 백야가 들어왔어. 운동화 벗는 소리, 가방 떨어지는 소리,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한꺼번에 현관을 채웠어.
"어? 이레 님?"
막내가 거실로 고개를 쑥 내밀었어. 젖은 앞머리 밑에서 눈이 동그래졌어.
"대기가 이레 님이었어요? 재민이 형은요?"
"사옥에 가셨어요. 내일 스케줄 짜신대요."
맨 마지막에 그 사람이 들어왔어.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있었어.
"통금 십 분 전입니다. 거실 불은 열두 시에 끕니다. 의자 옆 스탠드 하나는 켜 둡니다."
거실 전체에 하는 말이었어. 나를 부르지도 보지도 않았어. 그런데 스탠드를 켜 두는 건 밤새 그 의자에 앉아 있을 사람한테나 쓸모 있는 일이었어.
멤버들이 하나둘 방으로 흩어졌어. 막내만 소파 등받이에 매달려 그 사람을 올려다봤어.
"형. 또 그 표정."
"들어가. 내일 아홉 시. 대기 계신다, 거실에서 떠들지 말고."
짧고 평평한 반말 한가운데에 '계신다' 하나만 존댓말로 박혀 있었어.
그 사람이 내 의자 옆을 지나갔어. 눈은 내 얼굴로 오지 않고 의자 다리로 갔어. 줄눈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딱 그것만 확인하는 눈이었어. 그리고 지나가면서, 숨에 섞인 것처럼 아주 작게 말했어.
"…육십팔."
아침에 내가 지운 칸과 같은 숫자였어. 그 사람도 오늘 아침 한 칸을 지웠던 거야. 나는 못 들은 척했어. 그 사람은 돌아보지 않았어.
맨 끝 방문이 닫혔어. 딸깍. 문 아래 틈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어. 그 불은 꺼지지 않았어.
자정이 한참 지나자 복도에는 냉장고 소리만 남았어.
나는 일어섰어. 재 보자. 이 복도에서 뭐가 보이고, 뭐가 안 보이는지.
폰으로 통제실 화면을 열었어. 3번 카메라. 그저께 새벽 빨갛게 깜빡이던 그 칸이야. 내 의자 위 천장에서 복도 끝 비상문까지 길게 내려다보고 있었어.
한 걸음. 두 걸음. 복도 한가운데로 걸었어. 화면 속의 나도 작아지면서 같이 걸었어.
그러다 그 사람 방문 조금 앞에서 발이 멈췄어.
내가 멈춘 게 아니었어. 화면을 보기도 전이었거든. 바닥에 선이라도 그어져 있는 것처럼 발이 먼저 섰어.
폰을 내려다봤어. 화면 가장자리에 내 어깨가 반만 걸려 있었어. 반걸음 벽 쪽으로 옮겼더니 화면에서 내가 사라졌어.
천장을 올려다보니 이유가 보였어. 그 사람 방 쪽 벽 위로 낡은 배관 상자가 길게 튀어나와 있었어. 저게 가려서 그 아래 벽에 붙은 좁은 띠를 3번이 못 봐. 사각이야.
발이 멈춘 그 자리에서 벽에 어깨를 붙이고 걸었어. 숫자를 셌어.
하나. 둘. 셋.
방문 손잡이가 내 허리 옆을 지나갔어. 문틈의 불빛이 발등에 노랗게 걸렸다가 떨어졌어.
넷. 다섯. 여섯.
일곱.
발끝이 비상문 문턱에 닿았어. 화면에 잡힌 건 문하고 내 신발 앞코 반 개뿐이었어.
일곱 걸음 내내 화면 속 복도는 텅 비어 있었어. 비상문이 밀리는 마지막 순간만 빼고. 그저께 새벽 내가 화면에서 본 것도 딱 그 순간 하나였어.
핀을 꽂는 손은 내 거야. 그런데 아까 멈춘 발은 이 몸의 거였어. 이 몸은 이 벽에 어깨를 붙이고 이 길을 걸어 본 적이 있어. 언제, 왜인지는 몰라. 발만 알아.
뒤에서 문이 열렸어.
노란 불빛이 복도에 길게 쏟아졌어. 반팔 티셔츠 차림의 그 사람이 빈 물컵을 들고 문간에 서 있었어. 불빛을 등져서 얼굴은 그늘이었는데, 눈이 어디 와 있는지는 알 수 있었어. 비상문 앞, 3번이 못 보는 띠 끝에 선 나.
우리 사이에 네 걸음이 남아 있었어.
그때 비상문 작은 유리창 너머로 계단 센서등이 확 켜졌어. 아래층에서 구둣발 소리가 올라왔어. 순찰이었어.
지잉.
손목이 가늘게 떨었어. 나는 문틀 옆 벽에 등을 붙였어. 유리창으로 손전등 빛이 한 번 들이쳐 천장을 긁고 지나갔어. 다음 빛이 들어오면 문틈에서 쏟아지는 저 노란 불빛 속에 서 있는 나를 볼 거야.
그 사람이 움직였어.
등 뒤로 손을 뻗어 제 방문을 소리 없이 당겼어. 노란 불빛이 가늘어지더니 문틈 한 줄로 줄었어. 그러고는 한 걸음, 복도 한가운데로 나섰어. 벽 쪽 띠를 벗어나 3번 정면으로. 빈 컵을 든 채로.
다른 손이 내 쪽으로 낮게 들렸어. 손바닥을 아래로. 가만히.
손전등 빛이 다시 들어왔어. 내 머리 위 벽을 스치고, 복도를 따라 미끄러져, 그 사람한테서 멈췄어. 그 사람은 눈을 찡그리지도 않았어. 물 마시러 나온 사람처럼 컵을 조금 들어 보였을 뿐이야.
그 사람 가슴이 오르내리지 않았어. 숨을 멈춘 거야. 나도 따라 멈췄어.
덜컥.
손잡이가 한 번 흔들렸어. 잠겼는지 보는 손이었어. 문틀이 내 어깨 옆에서 떨었어. 문 하나 너머에 사람이 있었고, 이쪽엔 우리 둘이었어.
빛이 거둬졌어. 구둣발이 한 칸, 또 한 칸 아래로 멀어지고 센서등이 꺼졌어.
울림도 멎었어.
방금 그 몇 초, 3번 화면에 찍힌 건 그 사람 하나였어. 나는 없었어. 그 사람 손바닥은 구둣발이 다 내려간 뒤에도 잠깐 더 거기 떠 있다가, 늦게 내려갔어.
한 박자.
"…거기는 3번에 안 잡힙니다."
낮았어. 묻는 말이 아니었어.
"재 봤어요."
"압니다."
"…언제부터 보셨어요."
"문 밑으로 그림자가 지나갔습니다. 벽에 붙어서."
내가 셋을 세던 그때, 문 안쪽에서 그 사람도 보고 있었던 거야.
"그럼 왜 바로 안 나오셨어요."
"끝까지 가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나를 막지 않았다는 말이었어. 다 재게 내버려 뒀다는 말이기도 했어.
"아까는요. 왜 가운데로 나오셨어요."
"제가 찍히면, 물 마시러 나온 멤버입니다."
그 사람이 반걸음 물러나 다시 문간에 섰어. 배관 상자 그늘 아래, 3번이 못 보는 띠 안으로.
"둘이 찍히면, 기사고요."
그 계산을 방금 제 몸으로 한 거야.
"어떻게 아세요. 3번에 안 잡히는 거."
그 사람이 목을 한 번 옆으로 꺾었어. 어제 무대 끝나고 본 버릇이야. 곤란할 때 나와. 그러고는 빈 컵을 눈높이까지 들어 보였어.
"…물 마시러 나왔습니다."
"대답이 아니잖아요."
"대답 아닙니다. 물은 정말 마실 겁니다."
코로 짧게 웃음이 샐 뻔했어.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그 사람 눈이 내 발끝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의 배관 상자로 천천히 올라갔다가 다시 나한테 내려왔어.
"그러니까 거기는, 숨는 자리입니다."
빈 물컵을 든 손이 복도 저편을 가리켰어. 거실 끝, 스탠드 불빛 아래 줄눈에 맞춰 놓은 접이식 의자.
"감사관님 자리는 저깁니다."
숨어서 보지 마세요. 어젯밤 그 말이 이번엔 손끝으로 왔어.
숙소 안에서는 직함을 쓰지 않는다던 실장 말이 떠올랐어. 그 사람은 아무도 깨지 않을 만큼만 낮게 그 직함을 썼어.
"숙소 안에서는 직함 쓰지 말라던데요."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어. 컵을 쥔 손가락이 한 번 고쳐 쥐어졌어.
"…압니다. 거실에서는 안 씁니다."
그게 다였어. 고치지도 않았고, 이유를 붙이지도 않았어.
"자리는 제가 고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기 앉으시면 복도 끝까지 다 보입니다. 제 방문도요."
컵을 든 손이 내려갔어.
"보실 거면, 저기서 보세요. 저도 보이는 데로 다니겠습니다."
감시받는 사람이 감시받을 조건을 걸었어. 그러고는 아까 그 직함을 맨 끝에 또 붙였어.
"가서 앉으세요, 감사관님."
차갑게 들렸어. 그런데 그렇게 낮은 소리는 이 복도에서 나 말고 들을 사람이 없었어.
나는 돌아서 걸었어. 이번엔 벽에 붙지 않았어. 복도 한가운데로, 3번 정면으로 걸었어. 그 사람 옆을 지날 때 어깨와 어깨 사이에 한 뼘이 남았어. 섬유유연제 냄새 사이로 땀이 식은 냄새가 아주 조금 났어.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어.
두 걸음쯤 더 갔을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따라왔어.
"그 의자."
발이 멈췄어. 이번엔 내가 멈췄어.
"다리 하나가 짧습니다. 줄눈에서 빼면 흔들립니다."
그 말을 해 놓고 그 사람이 먼저 입을 다물었어. 하나를 더 흘린 걸 늦게 알아챈 사람처럼. 다리 위치를 두 번이나 고쳤다던 게 그래서였어.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걸었어. 폰 화면 속에 내가 또렷하게 찍혀 있었어. 혼자였어. 그 사람은 문 앞, 화면 밖에 있었어.
의자에 앉았어. 흔들리지 않았어.
잠깐 뒤 화면 속 복도 한가운데로 그 사람이 걸어 나왔어. 벽 쪽이 아니라 가운데로. 점점 커지다가 화면 아래로 빠져서 부엌으로 갔어. 화면에 잡힌 건 빈 물컵을 든 사람, 그것뿐이었어. 정수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길었어. 돌아갈 때도 그 사람은 내 쪽을 보지 않았어. 의자 다리만 한 번 봤어.
딸깍.
문틈의 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어.
팀장 말대로 바닥이 찼어. 양말 두 개 신길 잘했어. 무릎 위에 대기 일지를 펴고 첫 줄에 날짜를 썼어. 둘째 줄에는 이렇게 쓰려고 했어. 복도 3번 사각 있음. 배관 상자, 벽 쪽 띠.
볼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어.
이걸 적으면 내일 아침 실장 책상에 올라가. 그러면 저 천장에 카메라가 하나 더 달리겠지. 그게 맞는 일인지 나는 아직 몰랐어. 모르는 걸 적을 수는 없었어.
둘째 줄은 비워 뒀어.
한 시 반쯤 문틈의 불빛이 꺼졌어. 복도에는 비상구 표지의 초록빛 하나만 남았어. 잠든 걸까. 아니면, 기다리는 걸까.
폰을 무릎에 엎었다가 다시 뒤집었어. 비상문이 밀리면 이게 울려. 끄면 내 이름, 안 끄면 그 사람.
끌지 말지는 정말 몰라. 그래도 이번엔, 손 말고 내가 고를 거야. 그 사람 눈앞에서.
냉장고가 웅 하고 한 번 크게 울더니 조용해졌어. 졸지 않으려고 볼펜 끝으로 무릎을 세게 눌렀어. 폰 화면의 숫자가 바뀌었어.
한 시 오십팔 분.
복도 맨 끝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어.
쇠와 쇠가 맞물려 미끄러지는 소리였어. 불 꺼진 그 방문의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어.
폰은 아직 조용했어.
두 시까지 이 분. 비상문까지는, 일곱 걸음. 볼펜을 쥔 손바닥이 젖어 있었어.
의자가 덜컥, 처음으로 흔들렸어. 나도 모르게 그 사람 문 쪽으로 몸을 내밀다가, 그 사람이 맞춰 둔 짧은 다리를 내가 줄눈 밖으로 밀어 낸 거야.
3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