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끈 손
마지막으로 본 숫자는 한 시 오십구 분이었어.
내 방, 내 침대였어. 베개 옆에서는 휴대폰이 충전되고 있었고, 알람은 아침 일곱 시에 맞춰 두었어. 화면을 끄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이야.
웅웅. 형광등 소리.
우리 집엔 형광등이 없는데.
눈앞이 온통 화면이었어. 모니터 스무 칸이 벽 한 면을 파랗게 채우고 있었어. 식은 커피 냄새에 기계 열로 먼지 타는 냄새가 섞여 있었고. 그 스무 칸 중에 딱 한 칸만 빨갛게 깜빡였지.
삐, 삐, 삐.
화면 귀퉁이에 흰 글씨가 떠 있었어. 숙소 복도, 3번 카메라.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갔어. 키보드 오른쪽 위 버튼. 딸깍. 삐 소리가 끊기고, 빨간 칸이 다시 파래졌어. 일 초도 안 걸렸어.
…방금, 내가 뭘 끈 거지?
아니. 내가 끈 게 아니야. 이 손이 껐어. 내려다본 손은 내 손보다 손가락이 조금 길었고, 가운뎃손가락 옆에 펜 굳은살이 박여 있었어. 숫자 하나가 저절로 떠올랐어. 칠 년. 이 손은 칠 년 동안 새벽 두 시면 이 버튼을 눌러 왔던 거야.
화면 속에서는 한 남자가 복도 끝 비상문을 밀고 있었어. 검은 후드에 모자를 깊게 눌러썼는데도 옆얼굴 선까지는 못 감췄어.
지잉.
손목에서 뭔가가 가늘게 떨었어. 목에 거는 줄 대신 손목에 감긴 사원증이었어. 그게 울자 눈앞 허공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어.
감시 대상, 선우진. 보이그룹 백야 리더. 전속계약 제7조, 연애 금지. 위반 시 위약금 삼십억 원. 계약 해지.
들키는 순간 삼십억이 날아가. 컴백도 광고도 다섯 명의 스케줄도 한꺼번에 무너지고. 이 몸은 그걸 외우고 있었어.
그리고 그 사람 이름 아래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칸이 하나 있었어. 뭘 적는 칸인지 창은 말해 주지 않았어.
비상문이 닫혔어. 화면엔 빈 복도만 남고, 알람 기록 창에 한 줄이 새로 찍혔어.
02:00. 3번 해제. 계정, 이레.
이레. 이 몸의 이름이었어. 이제는 내 이름이기도 하고.
한 시 오십구 분에서 두 시로 넘어가는 그 일 분 사이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야.
그런데 하나가 더 있었어. 이 몸의 기억이 아닌 게.
눈을 감았다 뜨던 찰나에 장면 하나가 스쳐 갔어.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의 휴대폰 화면이 켜져. 네 시 십이 분. 맨 위에 속보 한 줄이 떠 있어.
[단독] 백야 리더 선우진, 컴백 쇼케이스 하루 앞두고 새벽…
뒤는 번져서 읽히지 않았어. 그 한 줄이면 충분했으니까.
첫 기사가 뜨면 끝이야. 이 몸이 칠 년 동안 이 방에서 지켜본 게 그거였어. 정정 기사는 아무도 안 눌러. 사람들 머릿속엔 첫 줄만 남아.
모니터 옆 벽에 달력이 걸려 있었어.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친 날짜가 하나 있었어. 백야 컴백 쇼케이스.
손가락으로 칸을 셌어. 오늘부터 칠십 일.
나는 방금 꺼 버린 알람 버튼에 손을 얹은 채로 그 숫자를 한참 봤어.
아침 아홉 시, 전략기획실.
차이경 실장의 방엔 비뚤어진 게 하나도 없었어. 펜 두 자루는 자로 잰 듯 나란했고, 에어컨은 조금 지나치게 차가웠어. 실장은 일어서지도 않았어.
"감사관님, 앉으세요. 오늘부로 감사관 발령입니다. 아티스트가 제7조를 어겼는지 조사해서 보고하는 자리예요. 근무지는 코디팀 막내, 선우진 씨 전담입니다. 한소라 팀장도 모릅니다."
물음표가 하나도 없었어. 회의록 읽는 목소리 그대로였어.
"선우진 씨가 통금 뒤에 숙소를 나간다는 제보가 있어요.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사건이고, 없으면 변수예요."
회사는 그 사람의 새벽을 연애로 읽고 있었어.
실장이 책상 위로 손목 줄 하나를 밀어 줬어. 회색이었어. 내 손목에 감긴 건 파란 줄이었고.
"줄은 바꿔 차세요. 감사 쪽은 회색입니다. 코디팀에 알아볼 사람은 없어요."
그러고는 노트북을 내 쪽으로 돌렸어. 어젯밤 3번 카메라 기록이었어. 새벽 두 시, 알람 해제. 계정 이름이 찍힐 자리는 화면 끝에서 반쯤 잘려 있었어.
"새벽 두 시 3번 카메라 알람, 누가 껐는지 정리해서 가져오세요."
목이 바짝 말랐어. 실장은 그 이름을 봤을까, 못 봤을까. 그 평평한 얼굴로는 알 수가 없었어.
"…네."
"태그 기록은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서버로 올라갑니다. 어디 있었는지는 안 남고, 울렸는지만 남아요." 노트북이 탁 닫혔어. "나가 보세요."
복도로 나와서 줄을 회색으로 바꿔 찼어. 어젯밤 그 사람을 지킨 건 이 손이었는데, 그 손이 남긴 한 줄이 지금은 내 목에 감겨 있었어.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했지. 그런데 하나가 빠져 있었어. 언제까지인지.
코로 짧게 웃음이 났어. 이 회사에서 기한 없는 숙제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칠 년 일한 이 몸이 제일 잘 알 테니까.
오후, 방송국 백스테이지.
"네가 이레야?"
한소라 팀장은 인사 대신 내 손부터 봤어. 앞치마 주머니마다 핀이며 가위가 꽂혀 있었어.
"손."
손을 내밀자 손바닥 위에 핀 쿠션이 툭 얹혔어.
"됐고, 핀부터. 우진이 첫 곡 끝나고 십오 초. 재킷 갈고 밑단 고정. 못 하면 말하고."
"할 수 있어요."
대답이 먼저 나갔어. 칠 년 동안 통제실에만 앉아 있던 몸이야. 옷핀 한번 쥐어 봤을 리가 없는데.
리허설 직전에 문이 열리고 백야 다섯 명이 들어왔어. 다들 떠들며 들어오는데 맨 앞 사람 걸음 소리만 달랐어. 일정하고, 서두르지 않았어.
선우진.
화면으로 본 옆얼굴보다 실물이 훨씬 차가웠어. 눈꼬리가 길게 빠진 늑대 같은 눈이었어. 조명이 닿기도 전인데 얼굴은 이미 완성돼 있었어.
"오 분 남았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팀장한테 갔어.
"팀장님. 첫 곡 끝나고 재킷, 십오 초 그대로입니까."
"그대로. 새로 온 애가 해."
나는 그 사람 어깨 너머 두 걸음 뒤에 서 있었어. 눈길은 오지 않았어.
"지난주엔 밑단이 두 번째 동작에서 풀렸습니다.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고요. 오늘은 팀장님이 직접 봐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봤어. 손."
그가 아주 잠깐 말을 멈췄어. 그래도 이쪽은 보지 않았어.
"…알겠습니다."
그 사람한테 나는 아직 행거 하나, 거울 하나였어.
첫 곡이 끝나 갈 즈음 무대 옆 퀵체인지 부스로 갔어. 암막 커튼 안에 불빛이라곤 손전등 하나뿐이었어. 바닥을 타고 올라온 베이스가 무릎을 툭툭 쳤어. 팀장이 새 재킷을 들고 내 옆에 섰어.
"온다."
커튼이 젖혀지면서 땀 냄새와 열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어.
"재킷. 십오 초입니다."
십오. 그가 팔을 뒤로 뺐어. 재킷이 벗겨지고.
십삼. 새 재킷. 왼팔, 오른팔.
"이레야, 밑단."
십. 무릎을 꿇었어.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어. 바짓단 한쪽이 접힌 채 말려 올라가 있었어. 지난주 그 자리야. 이대로 나가면 두 번째 동작에서 풀려.
머리 위에서 그 사람이 낮게 셌어.
"…팔 초."
칠. 입에 물고 있던 옷핀을 뺐어. 안쪽으로 두 번 접고, 찌르고, 잠가.
사.
나는 알았어. 핀 끝을 어느 각도로 넣어야 천이 울지 않는지, 어디를 잡아야 걸음을 떼도 틀어지지 않는지. 그건 이 몸이 아는 게 아니었어.
내가 아는 거였어.
이. 일어섰어.
"다 됐어요, 가셔도 돼요."
그는 벌써 커튼을 젖히고 있었어. 지나가면서 한마디를 남겼어.
"감사합니다."
스태프 누구한테나 하는 목소리로, 누구한테나 하는 만큼만. 눈은 무대 쪽에 가 있었어.
부스 옆 작은 모니터에 다음 곡이 떴어. 그리고 두 번째 동작이 왔어. 지난주에 밑단이 풀렸다던 바로 그 동작. 그가 바닥을 차고 돌아서는 순간 눈이 아주 잠깐 제 발목으로 떨어졌어. 반 박자. 밑단은 그대로였어.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다시 카메라를 봤어.
팀장이 손전등을 끄고 내 손을 잠깐 내려다봤어. 아무 말도 없었어. 그러다 행거 쪽으로 돌아서면서 툭 던졌어.
"밥은 먹었고?"
밤 아홉 시, 사옥 연습실.
컴백 곡 안무 리허설이었어. 거울 벽 앞에 다섯 명이 서 있었고, 나는 의상 행거 옆 구석에 있었어.
"다섯 번째. 처음부터."
음악이 다시 시작됐어. 그는 한 번도 틀리지 않았어. 손끝이 매번 같은 박자, 같은 높이에 떨어졌어.
"태오야, 후렴 반 박자 늦어. 다시."
목소리 한 번 안 높였는데, 다음 판엔 박자가 맞았어.
한 판이 끝나자 그가 이쪽은 보지도 않고 손만 내밀었어.
"코디님. 셔츠."
새 셔츠를 건네려는데 그 손이 멈췄어.
"다음 판에 바닥 동작 있습니다. 단추 있는 건 빼 주세요. 걸리면 뜯어집니다."
셔츠를 도로 걸고 단추 없는 티셔츠를 꺼냈어. 그는 받아 들고 돌아섰어. 이름 대신 직함, 눈 대신 손이었어.
"형, 얼굴."
막내였어. 물병을 흔들며 웃고 있었어.
"또 그 표정. 뭐가 문제야, 오늘은?"
그는 대답 대신 목을 한 번 꺾었어.
"…마지막 판이야. 물 마셔. 삼십 초."
삼십 초가 지나자 그가 거울 앞으로 돌아갔어.
"엔딩, 카메라 꺼질 때까지 시선 잡아."
마지막 판이었어. 음악이 끝나고 다섯 명이 엔딩 포즈로 동시에 멈췄어. 그러다 소리가 끊기자마자 넷이 바닥에 무너졌어. 헉헉대는 숨소리, 웃음소리, 물병 따는 소리가 뒤섞였어.
그 사람만 그대로였어.
포즈를 푼 뒤에도 삼 초가 더 갔어. 거울도 안 보고 허공을 보면서 입술만 아주 조금 움직였어. 소리는 없었어. 하나, 둘, 셋. 숨을 세는 것 같았어. 아니면 숨 말고 다른 뭔가를 세거나.
그걸 본 건 거울 구석, 행거 옆에 선 나 하나뿐이었어.
이상한 사람. 그땐 딱 그 정도였어. 아직은.
밤 열한 시, 사옥 지하 주차장.
밴에 실을 의상 가방을 들고 내려가자 콘크리트 냉기와 배기가스 냄새가 훅 끼쳤어. 저쪽에 밴 한 대가 시동을 건 채 서 있었어. 그때 기둥 뒤에서 누가 걸어 나왔어.
"이레 쌤?"
웃는 얼굴이었어. 목엔 기자증을 걸었고, 손엔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어.
"남도현이에요, 연예부. 쌤은 저 모르셔도 저는 쌤 알아요. 통제실에 계시던 분이 왜 옷 가방을 들고 계실까." 커피 한 잔이 내 쪽으로 왔어. 안 받았더니 아무렇지 않게 도로 거뒀어. "궁금한 건 하나예요. 요즘 새벽 두 시쯤, 숙소 복도 화면에 뭐가 찍혀요?"
지잉.
손목이 울었어. 처음은 그 사람이 비상문을 밀 때였고, 지금은 이 남자가 새벽 두 시를 입에 올린 순간이었어. 이 태그는 위험이 가까워지면 우는 거야.
"모르는 일이에요."
"그럼요. 그냥 한 장이면 되는데." 목소리가 오히려 더 부드러워졌어. "아무도 안 다치고 끝날 수도 있어요. …어쩌면요."
"이레 씨!"
주차장 끝에서 운동화 끌리는 소리가 났어. 남도현이 혀를 찼어. "재민 매니저님 오시네."
로드매니저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서 내 손에서 가방을 거의 낚아채 갔어. "기자님, 여기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 거 아시잖아요."
남도현은 어깨만 으쓱했어. "그럼 이건 오프더레코드로 하죠. 다음에." 그러고는 커피 두 잔을 든 채로 기둥 뒤로 사라졌어.
재민 씨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어. "저 진짜… 오늘 거의 못 잤거든요. 그래도 스케줄은 완벽합니다. 아, 우진이 형 셔츠는 위층 대기실에 좀 걸어 주세요. 밴은 제가 뛰면 돼요."
시동 걸린 밴의 선팅 유리는 까맸어. 그 안에 누가 앉아 있는지 나는 보지 않았어.
사옥 삼 층, 아티스트 대기실.
불을 반만 켜고 셔츠를 걸었어. 땀이 식은 셔츠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어. 시계는 열한 시 사십 분이었어. 숙소 통금까지 이십 분.
문이 거칠게 열렸어.
그 사람이었어. 제 옷으로 갈아입은 셔츠는 단추를 반쯤만 채운 채였고, 숨이 고르지 않았어. 엘리베이터 소리는 없었어. 계단을 뛰어 올라온 숨이었어. 안무를 다섯 번 돌려도 흐트러지지 않던 숨인데. 그는 들어오자마자 등으로 문을 밀어 닫고 그대로 기댔어. 문을 막아서는 사람처럼.
"…하필 지금이야."
혼잣말이었어.
그리고 나를 봤어. 처음으로, 똑바로.
"…이레 씨."
내 이름이었어. 부스에서 팀장이 딱 한 번 부른 걸 이 사람은 듣고 있었던 거야. 모니터 속에서 제 밑단을 내려다보던 그 반 박자처럼, 안 보는 척하면서.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처음 불린 내 이름은 나를 내보내려고 부른 이름이었어.
"셔츠만 걸고 나갈게요. 재민 씨가 부탁하셔서요. 일 분이요."
"일 분이면 사진 한 장 찍고도 남습니다." 그가 턱으로 안쪽 쪽문을 가리켰어. "셔츠는 두고 가세요. 그건 제가 정리할게요. 지금요. 의상실 쪽문으로 나가세요. 이 시간에 이 방에 둘이 있으면, 내일 아침 기사 한 줄입니다."
"…누가 오는데요."
"누가 오든요."
목소리는 하나도 안 높아졌어. 대신 말이 점점 짧아졌어.
"칠 년입니다. 칠 년 동안 제 이름으로 그런 기사는 한 줄도 안 났습니다. 오늘 처음 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고는 내 손에 들린 옷걸이를 봤어. 아니, 옷걸이 너머의 나를.
"주차장에서 기자랑 계셨죠."
숨이 턱 막혔어. 까만 선팅 유리. 거기 앉아 있던 게 이 사람이었어.
"…커피는 안 받았어요."
"그건 봤습니다."
말이 한 번 짧게 끊겼어.
"받으셨으면,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지도 않았습니다."
나를 의심하면서도, 이 사람은 나를 기사에서 빼내려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더 나가셔야 합니다. 기자 만난 새 코디랑 통금 이십 분 전에 한 방. 제목까지 보입니다. 쪽문 나가서 왼쪽 비상계단으로 내려가세요. 엘리베이터는 로비 카메라에 찍힙니다."
복도 저 멀리서 발소리가 났어. 아직은 멀었어. 손목이 짧게 떨었어. 지잉. 그리고 멎었어.
한 박자. 침묵이 끼어들었어.
그가 문에 등을 붙인 채 고개를 조금 숙였어. 아까보다 낮은 목소리였어. 나한테 하는 말인지 자기한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어.
"…쇼케이스까지만 버티면 돼요."
쇼케이스. 통제실 달력의 빨간 동그라미. 칠십 일.
이 사람도 같은 날을 세고 있었어.
쪽문 쪽으로 가다가 발이 멈췄어. 그나마 채운 단추 두 개가 한 칸씩 밀려 있었어. 깃은 한쪽으로 들려서 목을 쓸고 있었고. 단추 있는 건 빼 달라던 사람이 그 단추를 한 칸씩 밀려 채우고 있었던 거야. 이대로 복도에 나가면 누가 봐도 급하게 옷을 입은 사람이었어. 이 시간에, 이 꼴로. 그것도 기사였어.
생각보다 손이 먼저 갔어.
"잠깐만요, 여기 하나만."
그가 손바닥을 반쯤 들었어. 닿지는 않았어.
"…괜찮습니다. 나가시라고 했습니다."
"이대로 나가시면 그것도 기사예요."
그 사람 말을 그대로 돌려준 거였어. 대답은 없었어. 그가 숨을 한 번 들이쉬더니 들었던 손을 내리고 말없이 턱을 들었어.
단추 두 개. 풀고, 맞춰 잠그고, 깃을 눌러 펴. 삼 초. 손끝에 닿은 건 천이었고, 내 눈은 단춧구멍만 봤어.
"다 됐어요."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어.
이 사람은 늘 정확했어. 오 분이면 오 분, 십오 초면 십오 초. 그런데 그 한마디만 한 박자 늦었어.
"…감사합니다."
퀵체인지 부스에서 들은 것과 같은 말이었어. 그런데 목소리가 반 톤 낮았어.
그리고 그는 그 목소리를 곧바로 닫았어.
"쪽문은 안으로 당기셔야 열립니다. 소리 안 나게요."
또각.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났어. 이번엔 가까웠어. 또각, 또각. 굽이 바닥을 찍는 간격이 자로 잰 듯 똑같았어. 아침에 본 책상 위 펜 두 자루처럼.
지잉. 손목이 다시 울었어. 아까보다 길고, 아까보다 높게.
복도 천장엔 카메라가 있었어. 통제실 스무 칸 중 하나야. 이 사람이 계단에서 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그보다 먼저 내가 셔츠를 들고 들어오는 것도 거기 다 찍혔을 거야.
구두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어.
울림도 멎었어. 아무 소리도 없었어. 그 사람 등 너머, 문 한 장 건너에서 누가 숨 고르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어.
"감사관님."
차이경 실장이었어. 일부러, 또박또박.
"안에 계시죠."
한소라 팀장도 모른다던 그 직함을, 실장은 문 한 장 너머에서 그 사람 등에 대고 불렀어.
방금 그 한 박자가 그 사람 얼굴에서 지워지는 게 보였어. 아주 천천히, 빈틈없이. 그가 문에서 등을 뗐어. 손이 올라가 내가 방금 잠근 맨 위 단추에 닿았다가 거기서 멈췄어. 풀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았어. 눈은 내 얼굴에서 아래로 내려가더니 손목에서 멈췄어. 회색 줄이었어. 코디팀엔 알아볼 사람이 없다던 그 색.
"…감사관님이셨어요."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