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새벽
까마귀가 운다. 하나.
뼈의 숲 문턱에서 왼쪽으로 다섯째 자작나무, 사람 키 두 배쯤 되는 가지다. 소리는 늘 거기서 난다. 새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둘.
나는 눈 속에 모로 누워 있다. 오른손엔 도끼 자루. 눈은 무릎 깊이, 바람은 북동풍. 어제도 그랬다. 그제도 그랬다.
셋.
그리고 정적이 온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의 정적이 귀를 꽉 누른다. 이게 지나가야 하루가 시작된다. 같은 하루가.
일어나 앉자마자 셋째 나무부터 본다. 문턱에서 숲 쪽으로 서른 걸음, 껍질이 유난히 하얀 자작나무. 어젯밤 거기 삼끈을 한 바퀴 감고 매듭을 두 번 지어 두었다.
없다. 끈도, 매듭도, 거기까지 오간 내 발자국도. 눈은 밟히기 전으로 돌아가 판판하다.
"……그렇지."
목이 갈라진다. 나는 날마다 이 목을 처음 쓴다.
품에서 장부를 꺼낸다. 손바닥만 한 가죽 표지를 낡은 붉은 실로 엮었다. 내 왼 손목에 감긴 실과 같은 실이다. 밤이 끝나면 숲은 모든 걸 같은 새벽으로 되감는다. 여기 적은 글자만 남는다.
여섯 장. 장마다 머리에 같은 날짜, 겨울 둘째 달 열사흘. 맨 윗줄엔 같은 이름.
미콜라. 사냥꾼. 셋째 나무 밑. 얼어 죽음.
오른쪽 맨 아래엔 내가 그은 작은 칸이 하나 있다. 칸 머리에 한 글자, 값. 왜 그었는지는 모른다. 여섯 장 내내 비어 있다.
어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 하나다. 여섯 번 봤다. 일곱 번째는 안 볼 생각이다.
도끼를 짚고 일어서는데 숲 쪽에서 사람이 걸어 나온다. 눈 밟는 소리도 없이.
맨발이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로 발목 하나 빠지지 않고 걸어온다. 머리칼 끝에 서리가 앉아 있다. 잿빛 숄 아래 손목엔 붉은 실이 여러 가닥 감겼다. 다 바랜 실들 사이에서 한 가닥만 새것처럼 짙다. 내 손목 실과 같은 붉은색이다.
그녀는 경계에서 멈춘다. 쓰러진 뼈 표식들이 눈에 반쯤 묻혀 한 줄로 누운 자리, 숲과 바깥을 가르는 금이다. 나와 그녀 사이는 열두 걸음이다.
숨 들이켜는 소리가 없다. 말이 먼저 온다.
"도끼 든 손으로 인사부터 하는 건 어느 마을 예법이야, 나무꾼."
일곱 번째 듣는 말이다. 억양 하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추운 아침엔 말하는 입에서 김이 나와야 한다. 내 입에서는 난다. 그녀 입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도끼를 내리지 않는다. 지난 여섯 번은 내렸다. 그래도 달라진 건 없었다.
"오늘 사냥꾼 하나가 이리 들어와."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이 내 얼굴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목. 가죽끈에 꿰어 건 곰 어금니 단추. 누렇게 닳은 이빨 하나에 그 눈이 반 박자 머문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다시 올라온다.
"해 지기 전에 돌아가."
날씨 얘기를 하는 투다. 이미 다 겪어 본 날씨를.
"새벽까진 아무도 안 기다려."
'새벽'만 낮고 길게 굴린다. 그 한 낱말만 이 마을 노인들 말보다 오래돼 보인다.
그녀가 돌아선다. 나는 처음으로 그 등에 대고 묻는다.
"이름이 뭐야."
등은 멈추지 않는다. 자작나무 뒤로 들어간다. 한 걸음 따라가자 경계에 엉킨 가시덤불이 소매를 뚫고 팔뚝을 긁는다. 고개를 들었을 땐 아무도 없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도 발자국은 없다.
세 마디. 그녀는 언제나 세 마디만 하고 간다. 그리고 일곱 번 내내, 그녀는 내 이름을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즈본 마을은 언덕 하나 너머, 통나무집 스무 채다.
이 마을의 아침은 마을 사람들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우물가 영감이 얼어붙은 두레박에 욕을 한다. 욕 끝을 꼭 한 번, 위로 말아 올린다. 대장간 개가 두 번 짖는다. 나는 영감보다 먼저 그 욕을 입속으로 해 본다. 끝을 말아 올리는 자리까지 맞는다. 웃음이 날 법도 한데, 등이 서늘하다.
마을 끝 집 굴뚝에서 약초 연기가 오른다.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야리나가 내 손을 낚아챈다.
"손부터 녹여. 언 손으론 뭘 잡아도 놓쳐."
야리나는 나를 화덕 앞으로 끌고 가서 억센 손으로 어깨를 꾹 누른다.
"앉어, 보그단. 식는다."
내 이름이 오늘 처음 소리가 된다. 야리나의 짙어진 촌말 어미에 얹혀서.
야리나는 긁힌 팔뚝에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약초 반죽부터 바른다. 쓴 풀 냄새가 언 코를 뚫는다. 붕대를 감으면서야 묻는다.
"숲에서 뭘 봤어."
"여자. 맨발이었어. 눈에 안 빠져. 입에서 김이 안 나."
야리나는 내가 입을 다물 때까지 붕대 감는 손만 움직인다. 그러고는 한 문장을 얹는다.
"그 얘긴 다 먹고."
붕대를 다 감고도 야리나는 내 손을 놓지 않는다. 엄지가 내 손목의 붉은 실 위에서 멈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무슨 말을 할 것 같은데, 끝내 하지 않는다.
대신 화덕 위 소금 빵을 반으로 가른다. 반쪽이 내 손에 온다. 변경에서는 소금 빵을 같이 나눈 사람만 사람으로 센다. 이 부엌에서 나는 한 사람이다. 빵은 짜고, 따뜻하다.
문이 벌컥 열린다.
"보그단! 야, 내 말 좀 들어봐. 미콜라가… 아니 그게 아니라, 초소에서 길잡이를 구한다는데 미콜라가 손을 들었대. 숲 길잡이를!"
스테파나다. 나랑 오래 나무를 베던 나무꾼이다. 땋아 내린 머리에 눈이 하얗게 앉았고, 언덕을 뛰어 내려왔는지 숨이 턱까지 차 있다.
"알아."
"알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대답 대신 일어선다. 스테파나가 내 팔을 붙잡는다. 그녀는 겁이 나면 팔부터 잡는다.
"초소까진 같이 가 줄게. 근데 숲은… 나는 안 들어가."
웃음이 반 박자 빨리 터진다.
"아, 그거 알아? 숲 마녀한테 흰 까마귀가 있대. 이름이 그라흐래. 들은 말만 똑같이 따라 한대."
그 얘기는 여섯 번 들었다. 여섯 번 다 흘려들었다.
대공의 초소는 마을 북쪽 언덕에 있다. 역청 통 다섯 개, 얼어붙은 깃발 하나, 긴 탁자 위의 명부. 탁자 앞에 관리관 라도미르가 앉아 있다.
미콜라는 역청 통 옆에서 웃고 있다. 병사 하나가 뭐라 하자 왼손을 들어 흔든다. 약지가 없는 손이다. 대장장이 막내라, 열한 살 때 아버지 모루에 두고 왔단다. 반지 낄 손가락이 없으니 장가는 글렀다는 농담에 병사들이 웃는다. 어젯밤 셋째 나무 밑에서 하얗게 굳은 그 손이다.
"저 사람, 오늘 못 돌아와. 셋째 나무 밑에서 얼어."
라도미르가 고개를 든다.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성명이 어찌 되오."
"보그단."
손가락이 명부를 천천히 훑어 내린다.
"명부에 그런 이름은 없소. 그건 내 소관이 아니오."
"사람이 죽는다니까."
그는 대답 대신 펜을 잉크에 담가, 미콜라 이름 옆에 '소금 한 줌'이라고 또박또박 적는다. 변경에서 소금 한 줌은 하루 값이다. 펜은 사람 하나를 하루 값으로 적고 거기서 멈춘다. 그 종이 어디에도 내 말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대공의 길은 숲을 돌아가지 않소. 숲이 비켜서면 될 일이지."
끝까지 평평한 목소리가 마지막 '지'에서만 살짝 말려 올라간다. 아침에 우물가 영감이 욕 끝을 말아 올리던 바로 그 자리다.
나는 미콜라의 팔을 잡는다. 역청 통 뒤에서 시위 당기는 소리.
"거기. 그 손 놓으십시오. 한 번만 말합니다."
"두샨."
라도미르가 이름 하나로 궁수를 세운다. 소리는 높이지 않는다. 미콜라가 웃으며 내 손등을 툭툭 친다. 해 지기 전엔 돌아온다고. 나는 손을 놓는다.
그리고 초소를 먼저 떠난다. 여섯 번 동안 나는 측량대 꽁무니에 붙어 문턱을 넘었다. 오늘은 해가 지기 전에 문턱에 가 있는다.
해 질 녘, 측량대가 마지막 말뚝을 메고 문턱으로 내려온다. 앞장은 미콜라다. 스테파나는 경계 앞에서 멈춘다. 나는 이미 뼈 표식 위에 서 있다.
머리 위 어딘가에서 소리가 난다.
"돌아가. 돌아가. 돌아가."
흰 까마귀다. 사람 목소리도 새소리도 아닌 소리로, 낱말을 떼어 같은 높이로 말한다. 오늘 아침 열두 걸음 밖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뒷목이 식는다. 나는 표식을 넘는다.
"돌아가. 돌아가. 돌아가."
이번엔 낱말 사이에 숨 쉴 틈도 없다.
숲 안은 눈이 허리까지 온다. 측량대 횃불이 눈보라 속으로 하나씩 묻힌다. 낮에는 셋째 나무까지 서른 걸음이다. 해가 지면 몇 걸음인지 모른다. 여섯 번, 나는 걸음을 셌고 여섯 번 다 늦었다. 장부 여섯 장이 가르쳐 준 건 하나다. 걸음 수는 숲이 바꿔도, 셋째 나무 껍질은 늘 제일 하얗다. 오늘은 걸음을 세지 않는다. 횃불도 따라가지 않는다. 하얀 것만 보고 간다.
미콜라는 셋째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한 숨 늦었다. 해보다. 입가에 아침의 웃음이 그대로 굳었다. 활시위가 왼손 손가락 넷에 칭칭 감긴 채 같이 얼었다. 옆에는 그가 메고 온 마지막 말뚝이 눈에 모로 박혀 있다. 대공의 문장을 찍은 말뚝이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둘레에 다른 발자국은 없다. 여섯 번 동안 이 자리엔 늘 그녀가 먼저 있었다. 그녀가 시위를 끊었고, 그다음에 나를 봤다. 지난번엔 칼을 넣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나한테 한 말은 아니었다.
"또 아무도 안 왔네."
오늘은 내가 먼저다.
나무들 사이에서 그녀가 걸어 나온다. 눈 밟는 소리도 없이. 하얀 뼈칼이 이미 손에 있다. 그녀는 미콜라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칼을 시위로 가져간다. 나를 보기 전에. 여섯 번 그랬던 순서대로.
이번엔 칼보다 내 입이 먼저 열린다.
"미콜라. 대장장이 막내. 왼손 약지가 없어."
그녀가 눈을 든다.
칼보다 먼저다. 뼈칼은 시위 위에서 멈추고, 그녀의 눈이 나를 본다. 여섯 번 동안 한 번도 이 순서였던 적이 없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언 사람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 속눈썹 끝에 서리가 앉았다. 내 입김이 우리 사이에 하얗게 걸렸다가 그 서리 앞에서 흩어진다. 서리는 녹지 않는다. 그녀 쪽에서는 아무것도 건너오지 않는다.
도끼 자루를 고쳐 쥔다. 손바닥이 젖어 있다. 이 추위에.
숨 없이, 말이 바로 온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아?"
"아침마다 그 손가락으로 농담해. 열한 살 때 모루에 두고 왔대."
"숲은 이름을 안 물어, 나무꾼. 여기 들어온 건 다 발자국이고, 해가 지면 발자국은 눈이 덮어. 덮인 걸 누가 이름으로 불러."
나무꾼. 오늘 두 번째다. 장부에 적듯 센다.
"왜 들어왔는지부터 말해. 이름 부르러 온 건 아닐 테고."
"저 사람 데리러."
"데리러? 아침엔 도끼 들고 인사하더니, 밤엔 언 사람 데리러 숲에 들어와? 나무꾼은 하루에 몇 번 마음이 바뀌어?"
세 번째.
"안 바뀌었어. 아침에도 저 사람 얘기 했잖아."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박인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떠나 말뚝으로 간다. 미콜라보다 그 말뚝을 오래 본다.
"이거 박으러 들어왔어? 손가락 넷 얼려서?"
대답할 사람은 이미 대답을 못 한다. 그녀는 뼈칼 등으로 말뚝을 툭 밀어 눈 속에 눕힌다. 대공의 문장이 아래로 간다.
"데려갈 건 없어. 해가 떨어진 뒤에 언 것은 다 숲 거야. 사냥꾼이든 측량꾼이든, 뼈 표식 안쪽에선 셈이 같아."
나는 미콜라의 손에 손을 뻗는다.
"손대지 마. 언 손가락은 펴면 부러져. 시위를 먼저 끊어야 손이 저 혼자 풀려."
손을 거둔다. 그녀가 고개를 조금 기울인다.
"숨 좀 거둬. 언 손에 김이 앉으면 살갗이 먼저 터져."
나는 숨을 참는다. 그녀는 참을 숨이 없다. 우리 사이에 이제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목도리를 푼다. 미콜라의 얼굴에 덮는다. 어차피 새벽이 오면 그는 역청 통 옆에서 다시 웃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덮는다.
"그건 네가 낼 값이 아니야. 숲은 덮어 준 걸 세지 않아. 우는 것도, 덮는 것도."
'값'만 낮고 길게 굴린다. 아침의 '새벽'처럼. 장부 오른쪽 맨 아래, 그 빈칸이 귀에서 울린다.
"그럼 누가 내."
"물으면 값이 붙어. 숲에선 대답도 공짜가 아니야."
그녀의 눈이 목도리 끝에서 내 얼굴로 돌아온다.
"남의 이름은 잘도 아네. 제 건 안 내놓으면서."
내 이름이 목까지 올라온다. 삼킨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에 대답하면, 그것도 값이 붙을 것 같다.
바람이 가지를 흔든다. 그녀는 뼈칼을 쥔 채 문턱 쪽 어둠을 본다.
"해가 떨어지면 문턱까지 몇 걸음인지는 숲이 정해. 서른이 마흔이 되고, 마흔이 백이 돼. 세는 사람이 제일 늦게 나가. 그러니 세지 말고 나가, 나무꾼."
네 번째. 세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또 센다.
"어제 네가 그랬잖아. 또 아무도 안 왔다고."
한 번 끊는다.
"왔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간다. 가지에서 눈이 떨어진다. 대답은 그 뒤에야 온다. 아침의 세 마디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왔었는데.
"숲엔 오늘뿐이야, 나무꾼."
다섯 번째. 목소리가 아침보다 낮다.
칼이 시위를 끊는다. 그녀는 풀려난 왼손을 미콜라의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고 일어선다.
"그러니까 어제 같은 건…"
끝을 맺지 않는다. 등을 돌려 눈 위를 걸어가고, 발자국은 남지 않는다.
숲 깊은 쪽, 나무들 사이로 불빛이 하나 보인다. 오두막이다. 문이 열려 있는지 누런 빛이 눈 위로 길게 흘러나와 있다.
그쪽으로 세 걸음 간다. 그리고 멈춘다. 왜 멈췄는지는 모르겠다. 그 빛은 나를 부르는 빛이 아니다. 아직은.
돌아 나오는 길에 셋째 나무에 삼끈을 다시 감는다. 매듭 두 번. 내일 아침엔 없을 것이다. 알면서 감는다.
문턱에 앉아 장부를 편다. 일곱째 장. 머리에 같은 날짜. 맨 윗줄에 같은 이름.
미콜라. 사냥꾼. 셋째 나무 밑. 얼어 죽음.
그 아래에 처음으로 한 줄을 더 적는다.
이름은 내가 먼저 불렀다. 그녀가 칼보다 먼저 눈을 들었다. 숨 한 번만큼, 대답이 늦었다.
적고 나서야 생각한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는데.
그녀가 한 말도 옮긴다. 들은 그대로.
숲은 이름을 안 물어. 세지 말고 나가.
본 것도.
그녀 손목 실 하나가 새것이다. 내 실과 같은 색.
그리고 센 것.
나무꾼, 다섯 번. 이름, 한 번도.
오른쪽 맨 아래 값 칸에서 손이 멈춘다. 그건 네가 낼 값이 아니야. 그 말을 거기 적을 뻔했다. 비워 둔다.
나는 이 숲에서 내 이름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오늘도 삼켰다. 이 숲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다.
동쪽 하늘이 잿빛으로 묽어질 무렵, 어깨에 무게가 내려앉는다.
차가운 발톱이 외투를 뚫고 살갗에 닿는다. 흰 깃털이 뺨을 스친다. 그라흐다. 해 질 녘마다 머리 위에서 '돌아가'만 세 번씩 외던 새가, 처음으로 내 어깨에 앉아 있다.
새가 부리를 연다.
"보그단. 보그단."
두 번이다. 세 번이 아니라.
야리나의 목소리도, 스테파나의 목소리도 아니다. 낮고, 말끝이 아래로 떨어진다. 아주 희미하게, 숨 없이 시작하던 그 목소리를 닮았다.
까마귀는 들은 말만 따라 한다.
아무도 없는 데서, 김 하나 나지 않는 그 입이 내 이름을 굴려 보는 모습이 그려진다. 들킬까 봐 더 낮게, 한 번 더. 거기서 끊는다. 그런데 나는 그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듣고 싶다.
왼쪽으로 다섯째 자작나무, 그 가지에서 까마귀가 운다.
하나.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