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무릎 곁의 하루
물방울이 먼저 떨어졌다.
날 끝에 매달려 떨던 그 한 방울이 내 이마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차가웠다. 사람한테 물은 그냥 물일 뿐이다. 그 차가움에 굳어 있던 몸이 풀렸다.
"물러서십시오. 팔꿈치가, 굳었습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젖은 헝겊을 쥔 손은 쇠에 닿지 않게 멀찍이 빼고, 다른 손으로 앞치마 주머니에서 기름통을 뽑았다. 붉은 물이 번지는 경첩 틈에 주둥이를 댔다. 똑. 똑.
"팔꿈치야, 기름이야. 금방 풀어 줄게!"
끼— 하고 팔꿈치가 풀렸다. 풀린 팔이 내려오자 날도 팔을 따라 내 머리 쪽으로 내려왔다. 자루에 남아 있던 손가락 두 개마저 미끄러졌다.
안 돼. 내가 넣은 기름 때문에.
몸이 다시 굳었다. 눈을 감을 틈도 없었다. 그래서 다 보았다.
끽.
무릎 경첩이 먼저 울었다. 쇠로 된 몸이 통째로 내려앉으면서 날도 그만큼 낮아졌다. 끼익, 이번엔 어깨였다. 그의 어깨가 바깥으로 틀어지면서 도끼 든 팔이 내 쪽이 아니라 제 가슴 쪽으로 끌려갔다. 날이 내 이마 앞을 비스듬히 지나갔고, 그 바람에 앞머리가 들렸다.
쨍.
쇠와 쇠가 부딪는 소리가 숲 경계를 따라 길게 울렸다. 어금니까지 저렸다.
쿵. 도끼가 쐐기풀 위로 굴렀다.
그가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있었다. 날은 그 무릎 위에 떨어졌다가 굴러간 것이었다.
내 머리카락은 한 올도 다치지 않았다. 숨이 터지고 나서야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닉 초퍼 씨. 괘, 괜찮으세요?"
끽. 턱 경첩이 열렸다.
"다치신 데는 없군요."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는 한 줄을 더 보탰다.
"무릎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 무릎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을 덮은 양철 판 끝이 안으로 접혀 들어가 경첩 핀을 꽉 물고 있었다. 판 맨 위 한가운데에 도끼 자국이 하나 나 있었다. 비껴 맞은 자국이 아니었다. 날이 떨어지는 길 위에 무릎이 먼저 가 있었다. 넘어지다 꿇은 무릎이 아니라 그가 고른 자리였다.
접힌 틈으로 젖은 잎에서 떨어진 물이 스며 벌써 붉은 기가 돌았다. 무릎이 닿은 땅도 밤비에 젖어 질척했다.
물이다.
"제 손이, 아직 떨리네요. ……흙이 젖었어요. 기름천 깔게요."
앞치마 주머니에서 천을 꺼내자 그의 턱이 열렸다.
끽.
"그 천은, 새벽에 돌려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거예요. 제 천, 제가 깔아요."
무릎 밑으로 천을 밀어 넣어 젖은 흙과 쇠 사이를 막았다. 쇠에 손가락이 닿지 않게 천 끝만 썼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제야 그의 어깨 위로 그 글씨가 떴다.
첫서리까지 스물아홉 날. 이음매 마흔한 곳. 남은 녹 열한 곳. 심장 칸, 비어 있음.
새벽에 팔꿈치 하나를 걷어 내서 아홉 곳이었는데, 그사이 둘이 늘었다. 팔꿈치, 그리고 무릎.
"팔꿈치야, 너부터 하자. 넌 갓 앉은 녹이라 금방 닦여."
정말 금방 풀렸다. 긁개로 붉은 물을 걷어 내고 기름을 두 방울 더 먹였다. 그가 팔을 천천히 내렸다. 끽. 풀려 있던 손가락들이 하나씩 돌아와 제자리에 접혔다.
무릎은 달랐다.
헝겊을 감은 손톱 끝으로 접힌 쇠를 눌러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게 펴면 판이 찢어지고, 찢어지면 판을 새로 두드려 갈아 끼워야 한다. 관절 하나 가는 데 사흘이 걸린다는 건 할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다.
"세게 펴면 사흘이고, 살살 펴면 하루예요."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끽.
"그러면 오늘 하루를, 저 때문에 허비하지 마십시오."
"네?"
"새벽에 보니, 공방 섬돌에 공방 도끼가 한 자루 있었습니다. 그걸로 베십시오."
"저더러 나무를 베라고요?"
"오늘 하루면, 경계 나무 두 그루입니다. 공방 빚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셈이 반듯했다. 새벽에 그는 제 도끼만 집어 들고 우리 공방 도끼에는 손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도끼가 거기 있다는 것까지 봐 둔 사람이었다.
"그럼 닉 초퍼 씨는요?"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오셔서, 펴 주시면 됩니다."
"무릎은 혼자서는 안 풀려요."
"기다리는 건 익숙합니다."
한 박자도 늦지 않았다.
"일 년을 서 있었습니다."
손이 멈췄다.
아무도 오지 않는 쐐기풀 밭에서 일 년 동안 길 쪽만 보고 서 있던 사람이다. 그 말을 길이 미끄럽다는 말과 같은 높이로 하는 사람을 하루 더 혼자 세워 두라는 거였다.
나는 앞치마를 털고 그의 무릎 옆에 털썩 앉았다. 엉덩이가 금세 축축해졌지만 상관없었다.
"오늘은 여기, 무릎 곁에 있을게요. 장부에도 그렇게 적을게요. 무릎, 하루."
"그건 빚이 됩니다."
"그러니까 적는 거예요. 셈은 셈이잖아요."
어제 쐐기풀 밭에서 그가 나한테 한 말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긴 걸로 쳤다.
연장 가방을 끌어당기는데 턱이 열렸다.
끽.
"하루는, 일 년보다 짧습니다."
틀린 데가 없는 셈이었다. 일 년을 서 있던 사람에게 하루쯤은 아무것도 아니니 가도 된다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라서 가슴 어딘가가 쿵 내려앉았다. 그 일 년도 그는 이렇게 하루씩 접어 가며 버텼을 것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것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제일 작은 망치를 꺼냈다.
할아버지가 시계 경첩을 고칠 때만 쓰던, 손가락만 한 망치다. 접힌 쇠 끝에 헝겊을 한 겹 대고 두드렸다.
톡.
한 번에 머리카락 한 올만큼만 두드렸다. 쇠가 놀라지 않게, 제가 원래 어느 쪽으로 펴져 있었는지 쇠가 스스로 기억해 내게.
엘라야. 쇠는, 때리는 게 아니라 달래는 거란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손등 위에 얹혔다.
톡. 톡.
"무릎아, 놀랐지. 도끼가 너한테 떨어질 줄은 몰랐지? 나 엘라야. 엘라 쿠클립. 오늘은 너랑 있을 거야. 급하게 안 할게."
끽.
"무릎은, 이름을 듣지 못합니다."
"알아요. 그래도 말해 주는 거예요."
해가 비탈 위로 다 올라왔다. 젖은 쐐기풀에서 풀비린내가 올라오고, 쓰러진 첫째 그루에서는 아직 나뭇진 냄새가 났다. 손이 바쁘니 무릎한테 거는 말도 짧았다. 여기 조금만 더. 아프면 끽 해. 배고프면 끼익 하고.
끽.
"넌 끽이구나. 알았어. 살살 할게."
그는 숨소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가 거기 있다는 건 가끔 열리는 턱 경첩 소리와 내 손등에 드리운 그림자로만 알 수 있었다. 그림자는 해를 따라 자리를 옮겼을 뿐, 오전 내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낮이 되자 접힌 쇠가 손톱 반만큼 펴졌다.
그때 내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새벽에 기름통만 챙기고 빵은 잊고 나왔다.
끽.
"점심때가 지났습니다."
비탈을 내려가면 공방이 있고, 공방 선반에는 빵이 있었다. 나는 무릎한테 대고 말했다.
"들었어? 방금 내 배가 끼익 했어. 너 말고, 나."
끽.
"배에서 난 소리는, 꾸르륵이었습니다."
웃음이 터졌다. 그의 입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톡.
그때 손등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한낮 볕이 머리 위에서 곧게 내리꽂히는데, 그늘이 손등에서 망치 쥔 손가락 끝까지 한 뼘을 옮겨 와 멈췄다. 고개를 드니 그의 어깨가 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는 몸을 비틀어야 나오는 각도였다.
"어깨가, 기울었어요."
끽.
"볕이, 손 위에 있었습니다. 땀이 나시면, 그것도 물입니다."
그게 다였다. 내 손의 땀이 제 쇠에 떨어질까 봐 그런 건지, 그냥 내 손이 뜨거울까 봐 그런 건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늘은 그대로 내 손 위에 있었다.
그늘 안에서 망치가 다시 움직였다. 쐐기풀 위에 누운 도끼가 눈에 들어왔다. 자루는 손때로 까맣게 반들거렸고, 날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도끼야, 아침엔 네가 내 머리 위에 있었지. 너도 거기 가만있어. 넌 부엌엔 못 들어가지만, 숲에서는 괜찮아. 닉 초퍼 씨가 그러셨지?"
톡. 톡. 망치 박자를 타고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가 경첩을 두드릴 때마다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동쪽 마녀 나쁜 마녀, 도끼마다 저주 걸고. 잘린 것은 울지 마라, 다시는 안 돌아온다."
마지막 소절에서 망치가 멎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입이 저 혼자 도끼한테 물었다.
"……너한테 잘린 나무도, 다시는 안 돌아와?"
턱 경첩이 열리지 않았다. 숲 경계가 조용했다.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 속 등불이 조금 흐려져 있었다. 눈썹판 끝도 아주 조금 처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던 어제 한낮과 같은 얼굴이었다. 다른 것은 하나뿐이었다. 무릎 위에 얹혀 있던 쇠 손가락들이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말은 한 박자 늦게 왔다.
끽.
"……그렇습니다."
도끼한테 물은 말에 그가 대답했다. 아는 얘기라는 건지 맞는 얘기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얼굴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몰랐다. 그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망치를 내려놓고 헝겊을 새로 접었다. 그의 정강이에 핀 오래된 녹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생긴 녹이 아니었다. 쐐기풀 밭에서 일 년 내내 거기 있었을 녹이다. 긁고, 닦고, 기름 한 방울. 똑.
기름 떨어지는 소리가 숲 경계에 작게 퍼졌다. 오므라들었던 그의 손가락이 한 마디씩 다시 펴졌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하늘 한쪽이 어두워졌다. 산 쪽에서 바람이 내려오자 높은 가지들이 흔들리고 쐐기풀이 한꺼번에 누웠다.
툭.
굵은 빗방울 하나가 내 손등에 떨어졌다. 툭, 투둑. 다음 두 방울은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빗방울아, 안 돼, 거기 앉지 마!"
어깨에 앉은 두 방울을 마른 소맷부리로 훔쳤다. 무릎 밑의 기름천을 반만 빼내 무릎 위로 덮고, 나머지 반은 두 손으로 들어 그의 어깨와 팔꿈치 위에 지붕처럼 펼쳤다. 천이 모자랐다. 그래서 내가 비 오는 쪽과 그 사이에 섰다. 두 팔을 들고 등을 하늘로 향했다.
빗방울이 내 등과 머리를 두드렸다. 기름 먹은 천은 물을 동그랗게 굴려 떨어뜨렸다. 그의 쇠까지 내려간 물은 한 방울도 없었다.
끽.
"다 젖으십니다."
"사람은 젖어도 안 녹아요."
끽.
"압니다. 저는 비가 차가운지 모릅니다. 그래도, 젖으십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눈 속 등불이 보고 있는 건 천 밑의 무릎이 아니었다. 빗방울이 맺힌 내 어깨였다. 비가 차가운지 모른다는 사람의 눈이 내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구름은 금방 지나갔다. 젖은 숲 위로 다시 볕이 들었다. 나는 천을 걷고 무릎에 물기가 없는지 한참 들여다보았다. 없었다. 그에게서 떨어진 데로 가서 머리를 짜고 질끈 묶은 뒤 다시 곁에 앉았다.
끽.
"머리에서, 아직 물이 떨어집니다."
묶은 머리 끝에 정말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내 등 뒤까지 보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한 번 더 비틀어 짜고, 아까보다 손바닥 한 뼘 더 떨어져 앉았다.
톡.
오후는 길었다. 그림자가 내 발끝에서 무릎까지, 무릎에서 쐐기풀 너머까지 늘어났다. 접힌 쇠는 머리카락 한 올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판 끝이 경첩 핀을 조금씩 놓아 주는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손을 쉴 때는 그의 발목 뒤에 숨어 있던 묵은 녹을 하나 더 찾아 닦았다. 기름 한 방울. 똑.
톡.
손이 멈췄다.
방금 그 소리 때문이었다. 손가락만 한 망치가 헝겊 너머로 쇠를 한 번 두드리는 소리. 어젯밤 찬장 안에서 난 소리가 꼭 이만했다. 나무판을 안쪽에서 한 번 두드린 소리였다.
끽.
"망치가, 멈췄습니다. 쉬실 때가 아니었습니다."
"……네. 잠깐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따져 볼 틈이 없었다. 여기서는 비탈 아래 공방 지붕이 보이지 않는데도, 뒷방 찬장 문 아래로 밀려 나온 먼지 줄이 눈앞에 선했다. 일 끝나면 다시 올게. 오늘 새벽 내가 찬장한테 한 말이었다.
무릎한테는 별 얘기를 다 하면서 그 얘기만은 꺼내지 않았다. 그는 찬장 일을 모른다. 나는 모르는 채로 두었다.
톡. 망치가 다시 움직였다. 그림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침에 왜 무릎을 꿇었는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판 위의 도끼 자국을 본 순간부터 답은 알고 있었다. 물으면 그는 대답할 것이다. 자리를 골랐습니다. 그러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묻지 않고, 그가 고른 자리를 하루 종일 두드렸다.
해가 숲 경계 나무들 사이에 붉게 걸렸다. 첫째 그루가 쓰러진 자리에서 그루터기가 그림자를 길게 끌었다. 붉은 끈을 맨 둘째 그루는 반쯤 찍힌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무릎아, 넌 착하지? 해 지기 전엔 펴질 거지?"
톡.
그게 마지막 한 번이었다. 손끝에서 무언가가 딸깍 빠지더니, 접혔던 판 끝이 경첩 핀을 완전히 놓았다.
경첩 틈에 기름통 주둥이를 댔다. 똑. 한 방울이 핀을 타고 안으로 스며들었다. 똑. 한 방울 더.
"이제 펴 보세요. 천천히요."
끼이익.
길고 녹슨 소리가 난 다음,
끽.
짧고 맑은 소리가 났다.
그가 일어섰다. 젖은 흙에 눌린 무릎 자국이 쐐기풀 사이에 남았다. 그는 무릎을 한 번 굽혔다 폈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끽.
"무릎이, 움직입니다."
아침에 "움직이지 않습니다"라고 하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이 오늘 들은 어떤 말보다 좋았다.
그리고 그가 물러섰다. 끽, 끽, 끽. 이번엔 내가 셌다. 아침처럼 정확히 세 걸음이었다.
글씨가 다시 떴다. 스물아홉 날은 그대로였다. 날은 밤이 지나야 하나 준다. 남은 녹, 일곱 곳. 팔꿈치와 무릎, 그리고 일 년 묵은 녹 두 점이 빠졌다. 심장 칸, 비어 있음.
나무는 한 그루도 더 베지 못했다. 그게 조금, 다행이었다.
새 장부를 펴고 소리 내어 읽으며 적었다.
"경계 나무, 둘째 그루. 못 벰. 무릎, 하루. 기름 여덟 방울."
끽.
"여덟 방울. 맞습니다. 팔꿈치에 넷, 정강이와 발목에 하나씩, 무릎에 둘입니다."
그도 세고 있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보탰다.
"열한 시간입니다."
"네?"
"도끼가 떨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열한 시간입니다."
"……세셨어요?"
"셌습니다. 망치 소리도 셌습니다. 이천구백열두 번입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여덟 번마다 한 번, 손을 쉬셨습니다."
"제가요?"
"아침에 첫 나무 앞에서, 여덟 번째 도끼를 박고 기름을 넣으시던 박자입니다."
그의 얼굴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망치가 멈췄을 때 그가 쉬실 때가 아니었다고 한 말이 그제야 알아들어졌다.
나는 몰랐다. 오늘 하루 내 손이 그 박자로 쉬고 있었다는 걸. 여덟 번 두드리고 한 번 쉬고, 다시 여덟 번 두드리고 한 번 쉬고. 아침에 그가 세고 내가 기름을 넣던 박자가 반나절 만에 내 손에 배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내 손을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하나씩 세고 있었다.
일 년 동안 길 쪽을 보고 서 있던 사람이다. 아무 소리도 오지 않던 날에는 무엇을 셌을까.
그가 땅에 누운 도끼를 집어 들었다. 흙을 털고 날이 아래로 가게 쥐었다. 그리고 세 걸음 떨어진 데서 나를 보았다.
끽.
"고맙다고—"
말이 거기서 멎었다.
그 순간 그의 어깨 위에 남아 있던 글씨 가운데 맨 아랫줄이 한 번 흐려졌다가 돌아왔다. 심장 칸, 비어 있음. 눈을 깜빡였다. 글씨는 그대로였다. 그래도 나는 봤다. 그의 말이 멎은 바로 그 순간에 그 한 줄이 흔들렸다.
나는 숨을 참고 기다렸다. 이번에도 기름이 좀, 하고 닫아 버릴지.
그는 닫지 않았다. 끽 소리도 없이 말이 이어졌다.
"내일도 오겠습니다. 장부에 적으십시오."
빚이 아닌 줄을 적으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나는 장부를 다시 폈다. 둘째 그루 밑에 한 줄을 적고, 그가 들을 수 있게 소리 내어 읽었다.
"닉 초퍼 씨. 내일도 옴."
값을 적는 자리에서 펜이 멈췄다. 기름 몇 방울이라고도, 나무 몇 그루라고도 적을 수 없었다.
"……값은, 비워 둘게요."
그는 맞습니다, 하고 따라 읽지 않았다. 세 걸음 떨어진 데서 눈 속 등불만 장부 위에 머물러 있었다.
고맙다고, 그 뒤의 말은 끝내 오지 않았다. 녹도 물도 없는 턱이었다.
어제는 내가 내일 가겠다고 했고, 오늘은 그가 내일 오겠다고 했다. 값을 적지 못한 그의 이름을 손끝으로 한 번 쓸고 장부를 앞치마에 넣었다.
비탈을 내려가는 동안 등 뒤에서 끽 소리가 따라오지 않았다. 세 걸음 뒤가 비어 있었다.
공방은 어두웠다. 화덕 위 기름 솥만 보글거렸다. 등잔을 켜고 뒷방 문을 열었다. 놋쇠 걸쇠는 할아버지가 건 그대로였고, 문 아래 먼지 줄도 새벽에 본 그대로였다.
일 끝나면 다시 올게.
"……나 왔어. 일 끝났어."
대답은 없었다. 등잔 심지가 한 번 튀었다. 돌아서려는데,
톡.
한 번이었다. 나무판을 안에서 두드리는 소리. 오늘 하루 숲 경계에서 내 망치가 내던 소리와 꼭 같은 크기였다. 이번엔 내 말 뒤에 왔다.
놋쇠 걸쇠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숲 경계에서 그의 '고맙다고' 다음을 기다리던 그대로, 숨을 참고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3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