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로 놓인 밤
짚 밧줄이 손목을 파고들었다.
배전은 신께 절을 올리는 앞채다. 그 배전 기둥에 나를 묶던 남자가 마지막 매듭을 당겼다. 그 손에서 쇠 냄새와 먹 냄새가 났다. 못을 벼리고 부적을 쓰는 손이었다. 산 아래에서 그런 손을 가진 집은 하나뿐이다. 제일 큰 대문 집, 시라누이 댁.
"아야메, 원망하지 마라. 산이 원하는 거다."
그 사람은 끝내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돌계단을 내려갔다. 쇠 냄새도 그 뒤를 따라 내려갔다. 산 아래 마을에는 그해 가을 새로 단 전등이 줄지어 켜져 있었다. 다이쇼의 마을은 이제 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하얗고 납작한 빛이었다. 그 빛은 돌계단 중턱에서 끊겨 여기까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이 무너진 신사의 마지막 무녀였다. 그 밤부터는 제물이기도 했다. 내가 바란 건 하나뿐이었다. 아침을 보는 것.
그때 등 뒤에서, 천 년 동안 닫혀 있던 배전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문이 숨을 내쉬는 소리에 가까웠다. 찬바람이 목덜미를 쓸고 지나가자 재가 일었다. 처음에는 불이 난 줄 알았다. 문틈에서 붉은 것이 흘러나와 마루를 쓸었기 때문이다. 불이 아니었다. 꼬리였다. 끝이 횃불처럼 붉은, 긴 꼬리.
그 뒤로 맨발이 재를 밟았다.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천 년을 굶겼으면, 살진 것을 보내야지."
낮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드러웠다. 자장가처럼.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녀가 내 앞으로 돌아 나왔다. 흰 머리카락은 끝에서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은 등불을 하나씩 삼킨 것처럼 환했다. 그 눈이 나를 위에서 아래까지 훑었다. 값을 매기는 눈이었다.
"뼈만 남은 무녀 하나라. 너희는 여전하구나. 제일 아까운 것은 아랫목에 앉혀 두고, 남는 것을 산에 올리지."
그녀는 기둥 둘레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꼬리가 내 발목 옆을 스쳐 갔다. 닿지는 않았다.
"울지도 않고, 빌지도 않고. 묶여 있어서냐, 겁이 나서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멈췄다. 기다리는 침묵이었다. 그 침묵이 얼마나 가는지 그녀가 세고 있다는 걸, 나는 숨 쉬는 소리로 알았다.
"대답해 보거라. 천 년 만에 듣는 사람 목소리다. 비명이면 더 좋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름이 있었다. 히스이. 스무 해 동안 축문 맨 끝에 붙여 읽던, 이 신사에 모셔진 여우신의 이름. 그런데 그 이름이 소리가 되지 않았다. 혀가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손끝 하나가 내 턱 밑에 닿았다. 차가웠다. 얼음의 차가움은 아니었다. 오래 불을 때지 않은 아궁이의 차가움이었다.
"고개 들거라."
턱이 들렸다. 그 눈과 마주치자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몸이 기둥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녀의 손끝은 내 턱을 놓지 않고 같이 내려왔다. 무릎이 재 속으로 꺼지더니, 그 아래 마루 바닥에 닿았다. 스무 해 동안 늘 재 위에서 멈추던 무릎이었다.
그때였다.
마루가 말을 했다.
여자 목소리였다. 백 년쯤 묵은 목소리. 떨리는데도 또박또박했다.
삼가, 아룁니다.
부디.
저분을.
다시.
가두지.
말아.
주십시오.
내가 축문 첫머리마다 붙여 온 말로 시작하는 기도였다. 숨이 멎었다. 턱 밑의 손끝도 멎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촛불 하나가 흔들렸다가 다시 서는 동안쯤. 그래도 나는 느꼈다. 천 년 묵은 여우신의 손끝이 멈칫한 것을.
"그 눈."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방금 뭘 들었지."
입을 열었다. 대답이 나오기 전에 그녀가 웃었다.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코끝으로 흘린 짧은 숨이었다.
"됐다. 너희 입에서 나올 말은 천 년 전에 다 들었다. 살려 주십시오, 노여움을 푸십시오, 이번 한 번만. 순서까지 외운다."
손끝이 턱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허리를 펴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잡아먹지는 않으마."
나는 그 말이 약속인지 위협인지 몰랐다. 그녀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환한 눈이 내 코앞까지 내려왔다.
"삼키는 거야 한입이다. 안 삼키는 쪽을 내가 고른 거다. 그걸 잊지 말거라."
그녀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붉은 실이 그 손가락에서 풀려 나왔다. 실은 재 위를 기어 와 내 오른쪽 손목을 세 바퀴 감았다. 그녀의 손은 끝내 내 손목에 닿지 않았다. 손톱 끝이 짚 밧줄만 그었고, 밧줄은 툭 끊어져 재 위로 떨어졌다.
실의 다른 끝은 그녀의 손가락으로 돌아가 감겼다. 그 손목에 콩알만 한 놋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방울이 한 번, 딸랑 울렸다.
"이건 끈이 아니다, 무녀."
꼬리가 천천히 마루를 쓸었다.
"내가 이걸 놓으면, 너는 다시 오늘 밤의 제물이다. 내 무녀가 아니라, 산에 올려 둔 고기. 그때는 굶은 것이 마음을 바꾸어도 할 말이 없지."
그녀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네가 이걸 끊으면, 나는 봉인도 신사도 없이 굶는다. 끊어 보든가. 너희가 늘 하던 대로. 어느 쪽 손목이 먼저 아파 오는지 세어 줄 테니."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 눈이 시커먼 물이 고인 돌 수반에 머물렀다가, 아무것도 올라 있지 않은 제단에 머물렀다가, 안쪽 재 더미 속에 모로 쓰러진 무언가에 가서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물은 썩었고, 제단은 비었고, 내가 앉을 자리는 재 속에 누웠다."
꼬리 끝이 그 세 자리를 차례로 짚듯 흔들렸다.
"이 신사가 다시 숨을 쉬게 해 놓거라. 해 뜨기 전에. 무녀라면 어디부터 손댈지는 알 테지."
"…해 뜨기 전에, 못 하면요."
"그때 다시 셈하지."
제일 먼저 손이 간 곳은 배전 앞 돌 수반이었다. 참배하러 온 사람이 손을 씻는 돌그릇이다. 재와 빗물이 반씩 섞여 시커멓게 고여 있었다. 국자가 없어서 소매를 걷고 맨손으로 퍼냈다. 물이 뼈까지 시렸다. 손톱 밑에 재가 끼었다.
히스이는 배전 마루 끝에 걸터앉아 구경했다. 턱을 괴고, 꼬리는 한쪽으로 늘어뜨린 채였다.
"국자도 없이 맨손이라."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 물, 손가락부터 얼 텐데."
걱정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손을 빼는지 보려는 말이었다. 나는 시커먼 물을 한 움큼 더 퍼서 수반 밖으로 쏟았다.
"세어 줄까. 몇 번째에 손을 빼는지."
그리고 정말로 셌다.
"하나."
나는 퍼냈다.
"둘."
물이 손목까지 올라와 소매를 적셨다.
"…셋."
일곱을 넘기자 세는 소리가 그쳤다. 실이 한 번 팽팽해지려다가, 말았다. 놋방울은 울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퍼렇구나."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혼잣말처럼 마루 위에 떨어진 말이었다. 그런데 그 눈이 실이 아니라 내 손에 가 있었다.
"…겨울마다, 이랬습니다. 수반은 늘 저 혼자 비웠으니까요."
"누가 물었느냐."
"…아무도, 안 물으셨습니다."
그녀가 실을 당겼다.
딸랑.
손목이 앞으로 끌려갔다. 아프지는 않았다. 목줄을 한 번 당겨서 거기 아직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당김이었다.
"느껴지지."
숨이 반쯤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젖은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손목이요."
아프다는 말이 아니었다. 실이 당겨졌다고 알린 것뿐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축문을 혼자 읽어 온 사람은 그렇게 말하는 버릇이 든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프다는 말은 끝내 안 하는구나."
수반 바닥이 겨우 보이기 시작할 무렵, 실이 느슨해졌다.
돌아보니 그녀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실은 그녀의 손가락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땅으로 길게 늘어져 내 손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가 보든가."
등을 보인 채였다.
"실은 늘어뜨려 두마. 산 아래 불빛이 그리 좋으면, 가서 보거라. 너희가 신을 굶겨 가며 켠 불이다. 저 불 하나 켤 때마다 이 산 위에서 무엇 하나가 꺼졌느니."
나는 갔다.
신사 어귀에 세우는 붉은 기둥 문, 도리이가 줄지어 내려가는 비탈이었다. 실은 뒤에서 가볍게 끌려왔다. 다섯째 도리이 옆, 한쪽 귀가 깨진 돌 여우 곁에서 걸음이 멈췄다. 산 아래가 다 내려다보였다. 하얗고 납작한 전등 불빛들 사이에 기름 등불 하나가 따로 노랗게 타고 있었다. 신관 사카키 님 댁 처마였다. 사카키 님이 나를 이 산으로 올려 보냈고, 시라누이 댁이 나를 기둥에 묶었다. 그 밤에 나를 내놓은 집은 그렇게 둘이었다.
여우상 뒤에서 무언가 바스락했다. 돌아보았을 때는 마른 잎 하나만 굴러가고 있었다.
그 사이 손목의 실이 아주 조금 당겨졌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돌아오라는 당김은 아니었다. 내가 어디까지 갔는지 재어 보는 당김이었다.
그러고는 아주 늘어졌다.
당기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 무거웠다. 늘어진 실이 매달린 손목이, 짚 밧줄에 묶여 있던 그 손목처럼 무거웠다. 이 실이 땅에 떨어지면 나는 다시 산에 올려 둔 그것이 된다. 그녀가 말해 준 그대로였다.
나는 돌아섰다. 한 단을 오를 때마다 늘어졌던 실이 그만큼 짧아졌다. 당기는 게 아니었다. 감기는 것이었다.
배전 앞에 올라서서야 보였다. 그녀는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실 끝을 감은 손가락만 그 자세가 아니었다. 내 발이 마루에 닿자, 실을 감던 손가락이 멈췄다. 꼬리 끝이 한 번 움직였다.
"왜 돌아왔지."
겁이 나면 축문 버릇이 먼저 나온다.
"…삼가, 아룁니다. 아직, 일이 남았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돌아선 까닭이 그게 아니었을 뿐이다.
"오래 걸렸군."
"…송구합니다."
"천 년이면, 그쯤은."
그녀가 고개를 반쯤 돌렸다. 환한 눈이 어깨 너머로 나를 보았다.
"다섯째 도리이에서 한참 섰더구나. 실이 거기서 오래 안 움직였다. 무엇을 보았지."
"…등불을요. 하나만, 따로 켜져 있었습니다."
"따로 켠 불이라. 너희는 겁이 나거나 미안할 때 불을 켜지. 어느 쪽인지는 켠 놈도 모르고."
그녀의 눈이 잠깐 산 아래로 갔다가 돌아왔다.
"거기서 너를 묶은 손들이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을 테지."
"…예."
목소리가 평평하게 나왔다. 마을 이야기만 나오면 그렇다.
"그런데 실을 늘어뜨려 주었더니, 제 발로 감겨 올라오는구나."
감은 건 그녀의 손가락이었다.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눈이 재가 허옇게 묻은 내 무릎에 잠깐 머물렀다.
"재에 대고 절이나 하던 무릎이로구나. 수반이나 마저 비우거라."
묻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수반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한 움큼을 퍼내고 돌아서자, 그녀의 꼬리 끝이 제단 쪽으로 한 번 기울었다.
"물은 됐다. 다음은 저기다."
빈 제단 앞에 앉았다. 소매를 뒤져도 올릴 것이 없었다. 제물로 올라온 사람의 소매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그녀가 제단 옆 기둥에 등을 기댔다.
"빈손이로구나. 여기선 내놓은 만큼만 받는다. 이름이든, 기억이든, 처음 가진 것이든. 무엇을 내놓을지는 네가 고르거라."
무엇을 내놓을까 생각하던 그때 보았다. 기둥에 기댄 그녀의 손끝이 제단 촛불 앞에서 등불 연기처럼 흐려지더니, 여우 그림자가 되어 풀렸다.
그녀는 제 손을 보지 않았다. 나를 보았다. 그 눈이 내 얼굴을 지나 목덜미로 내려가 머물렀다. 한 박자. 빗으로 걷어 올린 머리 아래, 맨살이 드러난 자리였다. 배전 문이 처음 열렸을 때 나를 위에서 아래까지 훑던, 값을 매기던 그 눈이었다.
그 눈이 거둬졌다. 그녀는 흐려진 손을 소매 속으로 거두었다. 소매 천이 한 번 구겨졌다. 안에서 주먹을 쥐는 모양이었다.
"서두르거라."
목소리가 낮았다. 자장가처럼.
"굶은 것 앞에 목을 내놓고 오래 앉아 있지 말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녀도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에서 나무 빗을 뽑았다. 어릴 때 스즈 할머니가 꽂아 준 빗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져 본 내 물건. 빗살이 손바닥을 눌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손이나 이마를 댄 자리에서 소리를 들었다. 오래전 누군가 그 자리에 바친 기도가 다시 들린다. 그런데 이 빗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빗은 늘 그랬다.
"또 듣는 거냐."
그녀가 내 손을 보고 있었다. 손목이 아니라, 빗을 쥔 손을.
"마루에서도 그 눈을 하더니. 그 빗에선 무슨 소리가 나지."
조금 전에는 대답도 듣지 않고 됐다던 사람이었다.
"…그건, 아직 안 읽혀요."
"아직."
그녀가 그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렸다. 더 묻지는 않았다.
"그건 네 것이냐."
"…제가, 처음 가진 것입니다."
"아깝지 않으냐."
빗살을 한 번 더 쥐었다.
"…아깝습니다."
"그럼 받지. 아깝지 않은 건 봉납이 아니다."
빗을 제단에 올리자 나뭇결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 빛 너머로 종이 한 장이 펼쳐졌다. 내 눈앞에만. 붓으로 적은 장부 한 면이었고, 맨 아래 한 칸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또렷해졌다. 연기처럼 번져 있던 머리카락 끝이 붓으로 그은 듯 선명해졌다. 소매 속에 있던 손이 다시 나왔다. 그녀는 제 손가락을 한 번 접었다 폈다. 나를 보지는 않았다. 빗이 빠진 내 머리가 어깨로 쏟아졌다. 목덜미가 머리카락에 덮였다.
수반으로 돌아가니 바닥 틈에서 물이 솟고 있었다. 처음으로 맑은 물이 고였고, 그 위에 달이 비쳤다.
그때 돌계단 쪽에서 또 바스락 소리가 났다. 다섯째 도리이 여우상 뒤에서 나던 그 소리였다. 계단 끝으로 여우 귀 달린 동그란 얼굴 하나가 쏙 올라왔다.
"아야메 님, 맞으시죠? 스무 해 동안 재 쓸던 무녀님. 저는 코하쿠라고, 주인님 모시는 여우인데요, 천 년을 계단 밑에서— 아, 그건 다음에요."
그 얼굴이 배전 쪽을 한 번 살피더니 목소리를 절반으로 줄였다.
"주인님 기분요? 오늘은 일 할쯤 좋으세요.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일 할이에요."
"코하쿠."
이름 한 번에 그 얼굴이 도로 쏙 내려갔다. 귀 끝만 계단 너머에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물 위의 달과, 사라진 귀 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주 작게.
꼬리가 멈췄다.
"웃지 마라."
낮은 목소리였다. 까닭은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가 굳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사이 옷깃이 비껴났고, 목덜미에 붓으로 쓴 듯한 붉은 글자 자국이 언뜻 보였다. 그녀는 옷깃을 여미며 그대로 등을 돌렸다.
"…예."
웃음은 입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동이 트기 직전, 나는 안쪽 제단 앞에 섰다. 신이 깃드는 자리, 신체가 재 속에 쓰러져 있었다. 두 손으로 일으켰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팔이 떨렸다.
"무거우냐."
등 뒤에서 그녀가 말했다.
"천 년을 누워 있었다. 하루 더 눕는다고 달라질 것 없다."
나는 내려놓지 않았다. 받침대에 다시 앉혔다. 그리고 스무 해 동안 재에 대고 읽어 온 축문을, 그 순서 그대로 읽었다.
"높은 산 깊은 신사에 계신 신이시여. 삼가, 아룁니다."
여기서 늘 숨을 골랐다. 그 밤에도 그랬다. 목구멍에 걸려 있던 이름이 이번에는 소리가 되었다.
"히스이 님."
등 뒤가 고요해졌다. 꼬리가 마루를 쓰는 소리가 그쳤다.
허공에 장부가 다시 펼쳐지고, 한 귀퉁이에서 먹이 번졌다. 신사의 숨, 하나.
히스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박자 늦게 실이 당겨졌다.
딸랑.
"…느껴지지."
아까보다 목소리가 반 톤 낮았다.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놋방울이 한 번 더, 아주 작게 울렸다. 실을 당긴 소리였는지, 실 끝을 감은 손이 떨린 소리였는지.
"…손목이요."
같은 대답이었다. 내 목소리도 반 톤 낮게 나왔다.
또 침묵이 왔다.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깼다.
"신체가 비뚤다. 바로 앉히거라."
신체는 비뚤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두 손을 얹어 한 번 더 고쳐 앉혔다.
동쪽 하늘이 희끄무레해졌다. 아침이었다. 내가 바란 건 그것 하나뿐이었는데.
산 아래에서 첫 전차가 종을 울릴 시각이었다. 그 소리는 산 위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그런데 히스이의 고개가 아주 조금 그쪽으로 기울었다.
그때 맨 아래 도리이 쪽에서 쇠와 쇠가 부딪는 소리가 올라왔다.
짤그랑.
쇠못 꾸러미가 흔들리는 소리였다. 아직 혼자 노랗게 타고 있는 사카키 님 댁 등불 앞을 그림자 하나가 지나, 돌계단에 올라섰다. 허리에 쇠못 꾸러미를 차고, 어깨에 부적을 주렁주렁 단 그림자였다. 산 아래에서 못을 벼리고 부적을 쓰는 집은 하나뿐이다. 사카키 님 등불을 등지고 올라오는 것은 시라누이 댁의 못이었다.
히스이가 배전 끝으로 나섰다.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밤 들어 가장 센 당김이었다. 나는 신체 앞에서 끌려 나와 배전 기둥 아래에 무릎을 찧었다. 어젯밤 내가 묶여 있던 기둥이었다. 내 무릎이 처음으로 마루 바닥에 닿았던 바로 그 자리.
마루가 다시 말을 했다.
짤그랑.
부디.
짤그랑.
저분을.
짤그랑.
다시.
쇠못 소리가 한 걸음 올라올 때마다, 백 년 전 목소리가 한 글자씩 무릎으로 올라왔다.
가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제야 알았다. 저 못은 나를 데리러 오는 게 아니었다. 천 년 동안 저 문을 닫아 두었던 못이, 그녀를 다시 가두러 올라오고 있었다.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무릎이 마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기도가 무릎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 냄새."
히스이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더 부드러워졌다.
"쇠 냄새, 먹 냄새. 아는 냄새다. 천 년을 갇혀 있어도 저 냄새만은 잊지 못하느니. 너희 가운데 아직도 저 못을 벼리는 집이 남았구나."
냄새는 나한테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냄새를 알았다. 어젯밤 이 기둥에서, 내 손목에 마지막 매듭을 당기던 손.
그 집 이름이 혀 밑까지 올라왔다.
대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알았다. 천 년 동안 얼굴 하나 잊지 않은 신이다. 그녀를 산에 붙들어 둘 것이 아직 남아 있는지 나는 몰랐다. 남은 것이 없다면, 그녀는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저 냄새를 거슬러 산을 내려갈 것이다. 그 대문 집에는 나를 묶은 손만 사는 게 아니었다. 정월마다 신사 계단 밑에 떡 한 접시를 놓고 가던 부엌 할멈도, 대문 앞에서 팽이를 치던 아이들도 그 지붕 아래에서 잔다.
이름을 대면 그 집이 피를 본다. 대지 않으면 저 못이 그녀에게 닿는다.
어젯밤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던 때처럼, 혀가 입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무릎 아래에는 다시 가두지 말아 달라는 목소리가 있었고, 혀 밑에는 나를 묶은 손의 이름이 있었다.
히스이가 실을 제 손가락에 한 바퀴 더 감았다. 실이 그만큼 짧아졌고, 나는 무릎 꿇은 채 한 뼘 그녀 쪽으로 끌려갔다.
히스이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이 마루에 붙은 내 무릎에 닿았다가, 내 눈으로 올라왔다. 실을 감던 손가락이 멈췄다. 어젯밤 내 턱 밑에서 멈췄던 손끝처럼, 아주 잠깐.
그녀는 방금 뭘 들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등불을 삼킨 눈이 새벽빛 속에서 더 환했다. 너희 입에서 나올 말은 천 년 전에 다 들었다던 그 눈이, 이번에는 내 입술에 머물러 있었다.
"내 코보다, 네 입을 믿어 보마."
짤그랑.
"저 냄새의 집. 누구냐, 무녀."
1화 끝

쇠 냄새, 먹 냄새. 아는 냄새다. 천 년을 갇혀 있어도 저 냄새만은 잊지 못하느니. 너희 가운데 아직도 저 못을 벼리는 집이 남았구나.
읽은 데까지 기억하고 대답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