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의 죄
딱.
촛농 한 방울이 격자 아래 돌바닥에 떨어져 굳었다. 쇠 냄새가 났다. 무릎은 저렸다. 격자 너머에서 촛대가 올라왔다. 손에 드는 높이에서 멈추지 않았다. 내 눈높이까지 올라와서야 멈췄다.
이 탑에는 오래된 예의가 하나 있다. 심문관은 죄인의 눈을 보지 않는다. 죄인의 눈에 홀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촛불은 내 눈앞에 서 있었고, 그 불빛 너머의 눈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석 달째 그랬다.
"오늘 밤의 죄를 대."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판결문의 첫 줄 같았다. 심문관 다미안이다. 석 달 동안 나는 저 얼굴을 한 줄도 읽어 내지 못했다.
구석에서 필경사 토마스가 작은 목소리로 기록 머리를 읽었다.
"삼층 격자… 신탁 모독 혐의, 극작가 가스파르. 아흔한 번째 밤."
가스파르. 내 이름이다. 이 탑에서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주는 건 저 기록뿐이다.
불빛이 그의 왼쪽 눈가에 걸려 있었다. 거기만 묘하게 금빛이 돌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죄인은 묻는 자리에 앉지 않는다.
불이 가까우니 내 앞머리의 흰 줄 하나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잡혀 온 그 밤에 생긴 거다. 스물 몇 살에 흰머리라니. 극작가한테는 꽤 쓸 만한 소품이다.
"오늘은 불이 높군요, 심문관님." 나는 웃었다. "제 얼굴이 그렇게 볼만합니까."
"고해자의 얼굴은 기록 대상이 아니다."
촛대는 내려가지 않았다. 기록 대상도 아닌 얼굴을, 그는 석 달째 눈높이에 불을 켜 놓고 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말을 갈아 신었다. "제 날짜는 아직 멀었습니까."
"그건 고해자가 물을 일이 아니다."
한 박자도 늦지 않았다.
"날짜는 별이 정한다. 아는 건 대심문청과 담당 심문관뿐이다. 고해자는 그 명단에 없다." 그가 펜 끝으로 서판을 톡, 톡 두 번 짚었다. "고해자가 알 건 하나다. 오늘 밤 여기에 '믿을 만함'이 적히느냐, '못 믿겠음'이 적히느냐."
별이 정한 날짜는 저 사람 손안에 있다. '믿을 만함' 한 번에 그 날짜가 하루 뒤로 밀린다. '못 믿겠음'이면 별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음 날 새벽이 곧 그날이다.
담당 심문관.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안다. 내게 몇 밤이 남았는지, 지금 이 촛불 너머에서 알고 있다. 그리고 말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달 단위로도 주 단위로도 살지 않는다. 밤 단위로 산다. 오늘 밤 하나.
"제 입이 또 앞서갔군요."
"입이 앞서가면 뒤에 남는 게 없지." 그가 펜 끝을 잉크에 적셨다. 잉크 얼룩 하나 없는 길고 흰 손가락이었다. "…오늘은 또 무슨 죄를 짓고 왔는지, 들어 보지."
나는 눈을 감았다.
이 탑에서 내가 가진 재주는 이것 하나다. 눈꺼풀 안쪽이 서고처럼 어두워지면, 그 어둠 위로 지난 고해들이 잉크 줄이 되어 흘러간다. 날짜, 층, 죄, 그리고 판정. 남이 쓴 기록을 남의 어깨 너머로 훔쳐 읽는 것 같다. 어떤 죄가 통했고 어떤 죄가 안 통했는지, 나는 그 줄을 보고 안다.
오늘 밤에도 한 줄이 떠올랐다. '지난달 열이틀, 이층. 빵집 화덕에 성상 조각을 땔감으로 넣음. 판정, 믿을 만함.' 이층 남자는 그 죄 하나로 하루를 벌었다.
나는 버릇처럼 줄을 하나 더 찾았다. 촛불 너머 이 사람이 지난 석 달 동안 적은 판정. 오늘 무엇을 적을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한 줄만.
아무것도 없었다. 하얬다.
다른 심문관들은 지난 판정이 줄줄이 흘러서 무엇을 받아 주고 무엇을 내치는지 다 알려 준다. 이 사람이 쓴 판정만은 한 줄도 떠오르지 않는다. 석 달 내내 백지다. 그래서 이 사람 앞에서는 매일 밤이 처음 굴리는 주사위다.
나는 이층 남자의 죄를 내 것처럼 다듬어 올렸다. 화덕은 우리 극장 뒷골목 화덕으로 바꾸고, 성상은 소품 창고에 굴러다니던 것으로 했다. 장작이 젖어서 그랬다는 핑계를 붙이고, 끝에는 뉘우치는 숨까지 한 번 쉬었다. 무대에서 백 번은 해 본 리듬이었다. 그 리듬을 따라 그의 펜이 종이를 긁었다. 사각, 사각.
탁.
펜을 내려놓는 소리였다. 들으라고 낸 소리였다.
"…그건 고해가 아니라 인사군."
그의 입꼬리로 웃음기가 한 번 지나갔다. 정말 딱 한 번이었다.
"지난달 열이틀, 이층에서 같은 죄가 올라왔다. 화덕도, 성상도, 젖은 장작도 똑같다. 젖은 장작 핑계는 이층 그 사람이 할 때도 서툴렀지." 그가 손끝으로 서판을 밀어 놓았다. "고해자는 지금 남이 한 번 써먹은 인사를 또 하고 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하얬다.
"다른 걸 대." 그가 펜을 다시 들었다. "고해자 것으로."
빌려 온 대본이 안 통하면 새로 쓰면 된다. 극작가가 할 줄 아는 건 그거 하나다.
"작년 동짓달 그믐에," 생각보다 말이 먼저 굴러 나갔다. "예배당 봉헌 초를 훔쳤습니다. 우리 극장 조명이 모자라서요. 신께 바친 불로 광대 얼굴을 비췄습니다."
사각. 펜이 다시 움직였다.
"언제."
"방금 말씀드린 대로, 동짓달 그믐 밤입니다."
"동짓달 그믐이면 극장은 문을 닫는다. 눈 때문에. 고해자의 극단도 그랬을 거다."
등에 땀이 배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 겨울 내내 문 닫은 극장에서 연습만 했다.
"…연습용이었습니다. 문은 닫아도 연습은 하니까요."
"어디로 들어갔지."
"예배당 뒷문으로요."
"뒷문은 해가 지면 안에서 빗장을 지른다." 펜 끝이 그 말을 따라 적었다. "…누구와."
"혼자였습니다."
"혼자 한 죄는 판례가 제일 먼저 의심한다. 봉헌 초 함은 열쇠가 둘이다."
사각, 사각. 그의 펜과 구석의 토마스 펜이 함께 종이를 긁었다. 내가 무너지는 소리가 종이 두 장에 한 글자도 빠짐없이 적히고 있었다.
"일꾼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대 일꾼이요."
"그 일꾼 이름."
"…펠릭스."
"이름 하나 짓는 데 숨 한 번이 걸렸군."
언제, 어디서, 누구와. 이 탑의 심문관이라면 누구나 묻는 세 마디다. 이 사람이 물으면 그 세 마디가 송곳이 된다. 나는 막을 올린 뒤에 대본을 고쳐 쓰는 작가처럼 덧대고 또 덧댔다. 그러다 덧댄 자리에서 말이 미끄러졌다.
"그래도 그 초를 켜 놓고 보니 알겠더군요. 무대에서는 초 한 자루가 별자리보다 큽니다."
사각, 사각. 토마스의 펜이 그 말을 받아 적었다.
다미안의 펜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내려놓을 때와는 달랐다. 내려놓는 것과 멈추는 것은 다르다. 펜 끝이 종이에 닿은 채로 서 있었다. 한 획을 긋다 만 손이었다. 펜 끝에서 잉크가 종이로 천천히 번졌다.
딱. 촛농이 떨어졌다.
"잠깐."
나는 숨을 멈췄다.
"방금 그 말. 초 한 자루가 별자리보다 크다는 말." 그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늦게 이어졌다. "…그건 이막에서 광대가 하는 대사다."
목이 바짝 말랐다. 저린 무릎이 거기 있다는 것도 잊었다. 내가 쓴 대사가 저 낮은 목소리에 실려 돌아오자 가슴 안쪽이 한 번 세게 뛰었다. 겁이 나서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몸은 둘을 가려 주지 않았다.
석 달 전 내가 무대에 올린 풍자극 《별을 받아 적는 사람》. 나는 그 연극 때문에 여기 있다. 대본은 증거로 내 기록에 붙었을 테니 그가 읽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광대 대사 한 줄까지 외울 이유는 없었다.
"그 연극, 마지막 장에서 신탁은 뭐라고 하지."
언제도, 어디서도, 누구와도 아니었다. 대본이 기록에 붙어 있다면 마지막 장도 거기 있을 거다. 몇 장만 넘기면 된다. 그런데 그는 기록을 넘기지 않았다. 내 입만 보고 있었다.
토마스의 펜이 그 질문을 적기 시작했다.
"토마스." 다미안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건 적지 마라."
"…예."
펜 소리가 뚝 끊겼다. 사각거리던 공기가 통째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방 안에서 움직이는 건 이제 촛불뿐이었다.
촛대는 여전히 내 눈높이에 있었다. 그는 그 불빛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금빛 도는 눈가와 눈이 마주쳤다. 격자 아래로 내 손등이 보이고서야 알았다. 먼저 시선을 내린 쪽이 나였다. 석 달 동안 이 격자 앞에서 한 번도 져 본 적 없는 눈싸움이었다.
나는 웃었다. 겁이 나면 나는 웃는다.
"…마지막 장 대사를 제가 잊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대답이 오지 않았다. 숨 두 번쯤의 정적.
"…됐다. 기록에 없는 질문이다. 거둔다."
그가 서판 위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 정적은 길었다. 촛농이 두 번 떨어지는 동안 펜은 종이에 닿지 않았다. 나는 저린 무릎을 바닥에 박은 채 기다렸다. 저 손이 '못 믿겠음'의 첫 획을 긋는 소리를.
"서툴군." 그가 말했다. "동짓달 그믐에 극장은 닫혀 있었다. 뒷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봉헌 초 함은 혼자 못 열고, 일꾼 이름은 방금 지었다. 석 달 들은 고해 중에 제일 서툴다."
그래, 끝났구나. 새벽 공기는 무슨 냄새일까.
펜이 움직였다. 짧은 두 낱말이었다.
"판정."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말했다. "…믿을 만함."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제일 서툴다고 해 놓고 믿을 만하다니. 그 두 말 사이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눈을 감아 봐도 여전히 백지였다.
촛대가 천천히 내려갔다. 내 눈높이에서 손 높이로, 손 높이에서 바닥으로. 의자 다리가 돌바닥을 긁었다.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고해자."
"…예."
"…내일 밤, 다시 들어 보지."
발소리가 나선 계단 쪽으로 멀어졌다.
소등 직전, 쇠그릇이 격자 틈으로 밀려 들어왔다. 멀건 죽 위에 빵이 한 조각 더 얹혀 있었다.
"됐고, 먹어, 삼층."
간수장 헬가다. 이름보다 층수가 외우기 쉽다나.
"오늘은 두 조각이네요, 헬가 님. 저 내일 죽습니까?"
"규정엔 이렇게 안 써 있지만." 헬가가 코웃음을 쳤다. "배는 채우고 죽어야 덜 억울하지. 고마 묵어라."
말끝이 투박하게 꺾였다. 평소엔 눌러 두는 고향 억양이다. 이 사람은 누굴 챙길 때만 그게 샌다. 그리고 내가 물은 말에는 끝내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 다미안 심문관님 말인데요…"
짤랑. 대답보다 허리춤의 열쇠 꾸러미가 먼저 울렸다. 헬가는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흘렸다.
"내일 마당에 목재 들어온다. 시끄러울 거다. 잠 설치지 말고."
누구 거냐고 물을 틈도 없었다.
"형씨." 이번에는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건너왔다. 나흘 전 옆방으로 옮겨 온 이보다. 서로 얼굴을 모르니 그는 나를 형씨라고 부른다. "오늘은 무슨 죄를 지어냈어? 난 같은 걸 벌써 세 번째 우려먹는 중인데. 우물에 침 뱉으면서 신탁 욕했다는 거. 웃기지, 그게. 근데 아직 살아 있어."
나는 웃지 않았다. 눈을 감자 같은 고해를 두 번 올린 죄인들의 줄이 흘렀다. 끝은 전부 '못 믿겠음'이었고, 그다음 줄은 없었다.
이보의 줄도 그 사이에 있었다. '우물에 침을 뱉으며 신탁을 욕함. 판정,' 거기서부터 하얬다.
격자 너머 그 사람의 서판처럼.
나는 거기서 눈을 떴다. 결말을 너무 일찍 써 버리는 극작가는 망한다.
잠은 오지 않았다. 자정이 한참 지났을 때 계단 아래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고해실이 물러졌군."
늙고 메마른 목소리가 한 마디씩 끊어 박혔다.
"어제 죄와 오늘 죄를 재는 잣대가 왜 다른가?"
대답은 계단 중간쯤에서 올라왔다.
"규정대로 적었습니다, 수석심문관님."
다미안이었다. 그 시각까지 그는 탑을 떠나지 않았던 거다. 짧고 흠 없는 존대였다. 나한테 쓰던 반말이 아니었다.
수석심문관. 이 탑에서 그 직함으로 불리는 사람은 하나뿐이다. 오르반. 죄수들은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면 목소리부터 낮춘다.
천으로 유리를 문지르는 소리가 났다. 오르반은 말하기 전에 안경알부터 닦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 소리가 그쳐야 다음 말이 나온다.
"삼층 기록을 읽었다." 오르반이 말했다. "'석 달 들은 고해 중에 제일 서툴다.' 네 입으로 한 말이더군. 필경사가 정확히 받아 적었어. 그리고 그 밑에, '믿을 만함'."
"…예."
"규정대로, 라. 규정 어디에 그렇게 적혀 있나."
대답이 없었다. 계단에 걸린 모래시계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사락, 사락.
나는 짚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밤 내 앞에서는 한 박자도 늦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저 아래에서, 내 서툰 고해 하나 때문에 대답을 잃고 서 있었다.
"판정을 세 번 그르친 심문관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테지."
"…압니다."
다시 안경알 문지르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가 그쳤다.
"…다시 묻겠다."
발소리 두 개가 갈라졌다. 하나는 아래로 멀어졌다. 다른 하나는 위로 올라왔다. 한 칸, 또 한 칸. 작은 등잔 불빛이 격자 쇠창살을 하나씩 훑고 지나가다가, 내 격자 앞에서 멎었다. 어둠 속에서 뜨고 있던 내 눈에 불빛이 걸린 것이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옷깃에 걸고 있었다. 목을 조이던 무언가를 풀려던 손 같았다. 밀린 검은 옷깃 아래로 창백한 것이 언뜻 비쳤다. 살빛이라기엔 너무 하얗고, 불빛이라기엔 너무 차가운 무언가였다.
내 눈이 거기 가 있는 걸 그가 보았다. 옷깃이 소리 없이 제자리로 올라갔다.
"들었나."
"벽이 얇아서요, 심문관님."
"…고해자는 오늘 밤 잘 잊는군." 그가 말했다. "이것도 잊어라."
마지막 장 대사를 잊었다던 내 말을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거다. 귀 끝이 뜨거워졌다. 어둠이라 다행이었다.
"헬가 님 말이, 내일 마당에 목재가 들어온다더군요." 나는 어둠 속에서 물었다. "그 나무는 누구 겁니까."
등잔불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답이 한 박자 늦게 왔다.
"…오늘 같은 고해는 두 번은 안 통한다."
그는 그 말만 두고, 올라온 계단을 도로 내려갔다. 이 층보다 위에 볼일이 있는 발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 대답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어디에도 나무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게 대답으로 들렸다.
새벽이 왔다.
창 없는 방에도 새벽은 소리로 온다. 마당 쪽에서 쿵, 하고 무언가가 울렸다.
망치였다.
하나.
둘.
셋.
헬가가 말한 그 목재다. 누군가의 화형대가 서기 시작했다. 누구의 나무인지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머리가 벌써 오늘 밤의 죄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르던 건 살아남을 죄가 아니었다. 그 펜을 한 번 더 멈추게 할 죄였다.
쿵. 넷.
'…됐다. 기록에 없는 질문이다. 거둔다.'
그가 거둔 질문의 답은 지금도 내 혀끝에 있다. 오늘 밤 그 격자 앞에 들고 갈 죄는, 거둔 그 사람이 그 질문을 제 입으로 다시 꺼내게 만드는 죄다.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