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쇠못
나는 실을 쥐었다.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왼손으로, 내 오른쪽 손목에서 히스이의 손가락까지 건너간 붉은 실 한가운데를 움켜쥐었다. 실은 미끄러지고 있었다. 히스이의 손끝은 거의 연기가 되어 있었고, 그 연기 사이로 실이 한 마디씩 빠져나왔다. 아즈사 님의 망치는 아직 기둥 위에 떠 있었다.
실이 놓이면 어떻게 되는지는 어젯밤에 들었다. 그 말을 다시 떠올릴 틈은 없었다. 손이 먼저 알고 있었다.
나는 실을 손바닥에 한 바퀴 감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아주 조금 당겼다.
딸랑.
히스이의 손목에서 놋방울이 울렸다. 히스이가 당기지 않았는데 방울이 울린 건 처음이었다.
히스이가 나를 보았다. 등불을 삼킨 눈이 한 번, 아주 느리게 감겼다가 떠졌다.
"…당긴 쪽이 너로구나."
화난 목소리도, 웃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제 손에만 있는 줄 알았던 실 끝을 다른 손이 마주 쥐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챈 목소리였다.
"그대로 쥐고 있거라. 언제 놓는지, 세어 주마."
연기가 된 손가락 끝에서 실이 더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히스이의 손가락이 못 쥐는 만큼을 내 손이 대신 붙들고 있었다.
망치는 내려오지 않았다.
아즈사 님은 쇠머리를 든 채 우리 사이의 실을 보았다. 내 손바닥에 감긴 한 바퀴를 보았다. 그러고는 망치를 허리띠에 도로 꽂고 수첩을 꺼냈다. 이번에는 펼쳤다. 연필이 종이를 짧게 긁었다.
"무녀님은 신 쪽. 적었습니다."
연필이 한 줄을 더 쓰려다 종이 위에서 멈췄다. 아즈사 님의 눈이 히스이의 손목으로 갔다. 놋방울이 아직 가늘게 떨고 있었다.
"신이 당긴 것이 아니군요."
묻는 말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자로 잰 듯했다. 연필 끝만 종이에 닿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무녀 쪽에서 당겨 신을 붙든 일은 저희 집 기록에 없습니다.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없습니다."
수첩이 닫혔다. 닫는 손이 아까보다 반 박자 빨랐다.
"없는 일은 적을 칸이 없습니다. 오늘은 표시만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하겠습니다."
반쯤 박힌 못은 기둥에 그대로 남았다. 아즈사 님이 돌아섰다.
"그 못은 뽑으셔도 됩니다. 뽑은 손은 적겠습니다. 다음에는 못 말고 서류를 들고 오겠습니다."
아즈사 님이 히스이 곁을 지날 때, 이번에는 히스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라누이. 기록에 없는 것을 하나 들고 내려가는구나."
아즈사 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히스이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 집 장부에 한 줄 더 적거라.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신이 시라누이를 산 채로 내려보냈다고."
자장가처럼 낮은 목소리였다. 아즈사 님의 등은 한 번도 굽지 않았다. 다만 첫 단에 발을 내리는 순간, 허리춤의 부적 한 장이 바람도 없이 뒤집혔다. 짤그랑 소리는 올라올 때처럼 한 단에 한 번씩, 일정하게 멀어졌다. 쉰 단쯤에서 그 소리가 아주 잠깐 흐트러졌다. 나는 그걸 들었다. 히스이도 들었을 것이다.
소리가 다 사라진 뒤에야 실을 쥔 손을 풀었다. 손바닥에 실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허공에 펼쳐진 장부를 올려다보았다. 신사의 숨, 하나. 그 '하나'의 먹이 아직 번지고 있었다.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히스이는 배전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못 박힌 기둥에서 꼭 세 걸음 떨어진 자리였다. 실을 감은 손은 소매 속에 들어가 있었다. 언제 넣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실은 소매 끝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손이…."
"어디를 보느냐."
히스이가 내 말을 잘랐다.
"무녀. 실을 보거라. 실은 아직 매여 있다. 그러면 된 것이다. 너는 실이나 쥐고 있거라."
그러고는 턱으로 기둥을 가리켰다.
"저건 너희 쪽 쇠다. 너희 손으로 박았으니, 너희 손으로 뽑거라. 내 손 빌릴 생각은 말고."
나는 기둥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못은 생각보다 굵었다. 검은 몸이 나뭇결을 비집고 반쯤 들어가 있었다. 밖으로 나온 못대가리에는 붉은 먹 글자가 한 바퀴 둘려 있었고, 그 둘레가 칼날처럼 벼려져 있었다.
손끝이 쇠에 닿았다.
차가웠다. 그리고 조용했다.
나는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어젯밤 무릎이 마루에 닿자 백 년 전 그 기도가 올라왔다. 이 못에도 그런 것이 남아 있을 줄 알았다. 박은 사람이 빌었던 말이라든가, 하다못해 원망이라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안 나요."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늘었다.
"기도 없이 박은 못이에요."
말하고 나서야 생각났다. 어젯밤 제단에 올린 할머니의 나무 빗도 손에 쥐었을 때 이렇게 조용했다. 나는 그것을 아직 안 읽힌다고만 여겼다. 기도 없이 박힌 쇠와 소리 없는 빗이 왜 같은 침묵인지, 그때의 나는 몰랐다.
히스이는 한참 나를 보고만 있었다.
"소리가 안 난다라."
목소리가 한 겹 내려갔다.
"미워하는 손이면 내 얼굴이라도 기억했느니. 그 못은 나를 미워하지도 않는 손이 박았구나."
그 말이 춥게 들렸다. 백 년 전 누군가는 바로 이 마루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오늘 아침의 못은 아무 말 없이 박혔다.
나는 오른손으로 못대가리를 감싸 쥐었다. 손목의 실이 팽팽하게 섰다. 잡아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왼손을 겹쳐 쥐고 발바닥을 기둥 밑동에 댔다. 다시 당겼다.
못보다 내 손바닥 살이 먼저 밀려났다. 붉은 글자를 두른 쇠 둘레가 손금을 따라 파고들었다. 손바닥 한가운데서 뜨거운 것이 번졌다.
"…삼가."
악문 이 사이로 축문 첫머리가 새어 나왔다.
"아룁, 니다."
비틀었다. 나무가 끼익 울었다. 반 바퀴, 또 반 바퀴. 손바닥이 찢어지는 감촉이 소리처럼 또렷했다. 피가 검은 못을 타고 내려가 기둥 결로 스며들었다.
딸랑.
등 뒤에서 방울이 울렸다. 손목에는 아무 힘도 오지 않았다. 실은 당겨지지 않았는데, 방울만 혼자 한 번 떨었다. 이어서 아무 소리도 없었다. 히스이는 말리지 않았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손을 뗄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몸을 뒤로 젖히자, 못이 이 뽑히듯 둔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왔다. 나는 재 위에 주저앉았다. 흰 재가 확 일었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손바닥에서 굴러떨어진 못은 끊어진 짚 밧줄 옆에 누웠다. 어젯밤 나를 묶은 밧줄과, 오늘 아침 이 신사를 묶으려던 못이 나란히.
장부를 올려다보았다.
신사의 숨, 하나.
번짐이 멈춰 있었다. 처음처럼 또렷하지는 않았다. 가장자리가 물 먹은 종이처럼 부옜다. 그래도 '하나'는 '하나'로 남아 있었다.
손목에 실의 무게가 돌아왔다. 아까 가벼워졌던 무게가 원래대로. 소매 속 손가락이 다시 실을 쥘 만큼은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나는 히스이의 소매를 보았다. 손은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 돌아왔는지, 몇 마디만 돌아왔는지 나는 끝내 보지 못했다. 히스이는 그 손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날도, 그 뒤로도 오래.
눈이 저절로 옷깃으로 올라갔다. 비껴난 틈의 붉은 글자 자국은 물러나지 않았다. 새벽에 내려온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못을 뽑아도 거기까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피 냄새가 나는구나."
히스이가 코끝을 조금 들었다. 환한 눈이 내 손바닥에 내려앉아 오래 머물렀다. 하얀 목이 한 번 움직였다. 무언가를 삼키는 것처럼. 마루를 쓸던 꼬리 끝이 그 자리에서 멎었다.
그러고 히스이가 일어섰다.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마루 끝을 따라 세 걸음,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서 다시 앉았다. 내 피 냄새가 닿지 않는 자리였다.
"마루에 떨구지 마라. 천 년 굶은 것 앞에서 피를 흘리는 게 아니다."
새벽에 내 목덜미 위에서 멎었던 숨이 생각났다. 그 숨이 지금은 바람 위에 있었다. 나를 피해서.
나는 피 묻은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붉은 하카마 위에 더 짙은 붉은빛이 번졌다.
"…네."
히스이는 산 아래를 보았다. 새벽 전등이 하나둘 꺼지고, 아침 해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한참 뒤, 혼잣말처럼 한마디가 더 왔다.
"…실 쥐라 했지. 못 쥐라고는 안 했다."
늦은 말이었다.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낮았고, 떨리지 않았다. 다만 그 말이 끝날 때까지 히스이는 산 아래만 보았다. 나를 보지는 않았다.
"어머나, 어머나, 이게 무슨…!"
계단 쪽에서 목소리가 굴러 올라왔다. 코하쿠였다. 오늘은 물통을 들고 앞치마를 둘렀는데, 앞치마 자락 밑으로 꼬리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아야메 님, 손! 그거요, 제가 말씀드리자면요, 봉인 가문 못을 맨손으로 뽑는 분은 천 년 동안 처음 봐요. 맨손으로요!"
코하쿠는 내 앞에 털썩 앉더니 앞치마 자락을 쭉 찢었다. 물통 물로 손바닥을 씻고 찢은 무명을 감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너무 감지 마라."
바람 위 마루 끝에서 온 말이었다. 히스이는 이쪽을 보지 않았다.
"손이 둔해지면 실을 못 쥔다."
코하쿠가 한 바퀴를 도로 풀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눈이 수다보다 시끄러웠다.
무명 끝을 여미며 코하쿠가 목소리를 낮췄다.
"산 아래 신사 하나가 지난봄에 닫혔어요. 닫으러 온 건 신직회였어요. 장부에서 이름이 지워지면, 그 신은 사람 눈에 안 보이게 되거든요. 거기 권속 언니랑 친했는데요."
말이 뚝 끊겼다. 코하쿠는 이미 다 여민 무명 끝을 괜히 한 번 더 여몄다.
"…지금은 저도, 잘 안 보여요."
"그 권속 이름은."
마루 끝에서였다. 히스이는 여전히 산 아래를 보고 있었다.
"아직 기억하느냐."
코하쿠의 손이 멈췄다.
"…네. 아직은요."
"그럼 아직 다 굶은 건 아니다."
그 말을 끝으로 히스이는 입을 닫았다. 코하쿠는 대답하지 않았다. 코끝만 한 번 훌쩍였다.
나는 배전 쪽을 보았다. 시라누이 댁은 산 아래에 있었다. 이름 하나를 천 년 기다린 신이, 그 이름을 듣고도 앉아 있었다.
"그럼 히스이 님은 왜, 산을 내려가지 않으세요?"
"아, 이건 비밀인데요. 주인님은 맨 아래 도리이 밖으로는—"
"코하쿠."
크지 않은 소리였다. 코하쿠의 목소리가 그 자리에서 반으로 줄었다.
"…네, 주인님."
코하쿠가 물통을 챙기는 척하며 내 귀에 입을 댔다.
"주인님이요, 아침 내내 실을 한 번도 안 당기셨어요. 못 박혔을 때부터 지금까지요. 당기시는 건 얼마나 멀리 있나 재 보시는 건데, 안 당기시는 건요, 음…. 그건 저도 처음 봐서요."
마루 끝에서 히스이가 고개를 돌렸다. 아침 내내 산 아래만 보던 눈이 처음으로 이쪽에 왔다.
"코하쿠 셈은 천 년째 반이 틀린다."
코하쿠가 물통을 끌어안고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히스이의 눈은 그대로 내게 남았다.
"나머지 반이 맞는지는, 묻지 마라."
나는 묻지 않았다. 히스이도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무너진 담장 쪽으로 턱을 들었다.
"담장 돌이나 올리거라."
오후 내내 나는 무명 감은 손으로 담장 돌을 날랐다. 다섯째 돌에서 무명에 피가 배어 나왔다.
그때 처음으로 히스이가 마루에서 내려왔다. 발소리 없이, 담장 그늘까지. 돌 하나 거리에 서서, 배어 나온 피를 내려다보았다.
"또 피다."
"…네."
"그런데 왜 또 드느냐."
나는 여섯째 돌을 들었다.
"…아직 일이 남았습니다."
"어젯밤에도 그 말을 했지. 일이 남았다고."
히스이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너희는 일이 남으면 도망을 안 가느냐."
"…갈 데가, 없습니다."
돌을 쌓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돌 틈에 끼워 넣듯 했다.
히스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일곱째 돌을 내려놓을 때까지.
"갈 데가 없는 것과 안 가는 것은 다르다. 너는 어느 쪽이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의 나는 둘이 다르다는 것조차 몰랐다.
"대답은 나중에 듣마. 그 손으로 돌 말고 다른 걸 쥘 수 있을 때."
해가 산마루에 걸렸을 무렵, 나는 빗자루를 들었다. 아침 몫을 못 했으니 저녁에 두 몫을 쓸 생각이었다. 그리고 재 위에 누운 못을 무명 조각에 싸서 품에 넣었다.
"그건 어디로 가져가느냐."
"…버리려고요."
"버리거라. 도리이 밖에. 내 집 안에는 두지 마라."
내가 계단을 내려가자 히스이가 뒤따라 내려왔다. 발소리 없이, 꼬리 끝이 돌을 쓰는 소리만 내며. 실은 내가 앞서 간 만큼 팽팽해졌다가, 히스이가 따라온 만큼 다시 늘어졌다.
"따라오세요?"
"내 집에서 나가는 쇠다. 나가는 것까지는 봐야지."
백 단에 도리이가 아홉. 스무 해 동안 하루 두 번씩 쓸어 온 길이었다. 다섯째 도리이에서 나는 귀 깨진 여우상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계속 내려갔다.
"여섯."
등 뒤에서 히스이가 세었다. 도리이 하나를 지날 때마다.
"일곱."
빗자루 끝에서 낙엽이 쓸려 갔다.
"여덟."
아홉째, 맨 아래 도리이가 보였다. 붉은 칠이 다 벗겨진 두 기둥 사이로 산 아래 길이 저물고 있었다. 나는 그 아래를 지났다.
수 세는 소리가 거기서 멎었다. '아홉'은 오지 않았다.
돌아보니 히스이는 도리이 바로 안쪽 단에 서 있었다. 한 발도 더 내딛지 않았다.
나는 한 단 더 내려섰다. 산 아래 흙길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실이 내 손목에서 히스이의 소매까지, 두 기둥 사이를 가로질러 팽팽하게 섰다.
"거기서부터는 내 집이 아니다."
히스이의 눈이 내 손으로 내려왔다. 무명에 배어난 피가 저녁빛에 검게 보였다.
소매가 올라왔다. 실을 감은 쪽이었다. 그런데 실을 고쳐 쥐는 손짓이 아니었다. 소매 끝이 실을 지나쳐, 무명 감은 내 손바닥 쪽으로 곧장 왔다. 어젯밤 손끝으로 내 턱을 들어 올린 뒤로, 그 손이 실 아닌 것을 향해 온 것은 처음이었다.
소매 끝이 두 기둥 사이를 넘었다.
넘는 순간 소맷자락이 저녁 공기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소매 안에서 나오려던 것이, 나오기도 전에 연기가 되었다. 내 손바닥까지 한 뼘. 그 한 뼘을 연기만 건너왔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손목의 실이 가벼워졌다. 아침에 못이 박혔을 때와 똑같은 가벼움이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낮에 잘린 코하쿠의 말이 그제야 끝까지 들렸다. 맨 아래 도리이 밖으로는.
히스이가 소매를 거두었다. 천천히. 실의 무게가 돌아왔다.
"봤으면 됐다. 코하쿠 입으로 듣는 것보다는 낫겠지."
손을 왜 내밀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히스이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도리이 한 칸만큼 위에서.
"어젯밤엔 내가 실을 늘어뜨려 주었다. 오늘은 그럴 것도 없다. 거기서 한 걸음이면, 나는 못 쫓는다."
한 박자.
그리고 실을 한 번 당겼다. 가볍게. 못이 박힌 뒤로 처음, 히스이 쪽에서 온 당김이었다.
딸랑.
"…느껴지지."
목소리가 아까보다 낮았다.
당김이 손목을 지나 무명 감은 손바닥까지 내려왔다. 찢어진 자리가 실을 따라 욱신거렸다. 늘 하던 대답이 혀끝에 있었다. 그 말 대신 다른 말이 나왔다.
"…아픕니다."
히스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박자, 두 박자. 그러고서야 실이 늦춰졌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갈 데가 없는 것과, 안 가는 것. 낮에 받은 물음이 그 자리에서 다시 올라왔다. 나는 품에서 못을 꺼냈다. 도리이 밖에 버리라던 못이었다. 그리고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때, 산 아래 길 끝에서 불빛 하나가 올라왔다.
등불이었다. 흔들리며 다가오던 불빛은 내 발치에서 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멎었다. 등불을 든 손은 굵고 거칠었다. 바랜 신관복 소매가 그 손목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등불을 알았다. 어젯밤 다섯째 도리이에서 내려다본 마을 불빛 사이에, 하나만 따로 켜져 있던 등불이었다.
사카키 님이었다. 산 아래에 남은 이 신사의 마지막 신관. 어젯밤 나를 산 위로 올려보낸 사람.
사카키 님은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등불을 조금 들어 무명 감은 내 손을, 그 손에 쥔 검은 못을 비추었다. 불빛이 거기서 멈췄다.
"아야메."
바닥에 떨어뜨리듯 낮은 목소리였다. 히스이가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이름이었다.
등 뒤에서 실이 소리 없이 팽팽해졌다.
"내려가자. 신직회가 오기 전에."
신직회. 낮에 코하쿠가 무명을 여미며 흘린 말이었다. 닫으러 온 건 신직회였어요.
사카키 님이 등불을 내렸다. 불빛이 흙길로 쏟아졌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숨이 길었다.
"신을 장부에서 지우러 오는 사람들이다. 무녀 없는 사는 지운다. 지워진 신은 사람 눈에 안 보이게 되고, 굶어 흩어진다."
"내려오면 너는 사람으로 산다."
"남으면 못 내려온다. 신 곁에 남은 무녀가 사람으로 산을 내려온 일은 없다. 시라누이 장부만 그런 게 아니다."
등불을 들지 않은 손이 내 앞으로 나왔다. 굳은살 박인 손바닥에서 짚 냄새가 났다. 어젯밤 내 손목을 파고들던 밧줄은, 매듭이야 시라누이 댁이 당겼어도, 이 손이 꼰 것이었다.
여전히 내 눈은 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할 일만 있었다.
앞에는 그 손이 있었다. 한 걸음이면 닿았다. 저 손을 잡으면 나는 산다. 대신 실이 끊기고, 무녀 없는 사는 장부에서 지워지고, 도리이 안쪽의 신은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채로 굶는다. 코하쿠의 그 언니처럼.
뒤에는 도리이 안쪽, 한 발도 나올 수 없는 자리에서 실 끝을 쥔 신이 있었다. 실을 쥐면 나는 다시는 사람으로 이 길을 내려가지 못한다. 오늘 아침 내 피 냄새에 목이 움직이던 그 신 곁에서, 제물로 산다.
쥐고 있던 못이 무명 너머 상처를 눌렀다. 어젯밤 나를 묶은 밧줄을 꼰 손이 앞에 있었고, 오늘 아침 이 신사를 묶으려던 쇠가 내 손에 있었다.
실이 한 번 당겨졌다. 아까 늦춰 준 손가락 한 마디만큼, 도로.
딸랑.
늘 따라오던 그 한마디는 오지 않았다. 등 뒤에서 숨 한 번이 들어가고, 처음 듣는 소리가 나왔다.
"…무녀. 가—"
거기서 끊겼다. 가거라였는지, 가지 마라였는지.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사카키 님의 손은 그대로 내 앞에 있었다. 실은, 이번에는 늦춰지지 않았다.
3화 끝




